오늘은 2023

270. 내 눈의 나무 20231119

by 지금은

‘나무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거야.’

고향의 모습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 내가 다니던 등굣길이 허전합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시골을 떠나 한동안 발길을 끊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고향을 찾았습니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군데군데 흠집이 있습니다. 좁은 길이 넓어져 고갯마루를 넘었습니다. 간간이 큰 차들이 이웃 고장에서 달려오고 또 반대로 고개를 넘습니다. 태어나서 탈 것 중의 제일 먼저 본 게 비행기였을 정도의 산촌이었습니다. 자전거를 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입니다.

봄이면 민둥산은 꽃 자랑을 했습니다. 온 산을 뒤덮은 진달래입니다. 집마다 울타리의 개나리도한몫했습니다 했습니다. 하지만 진달래로는 여름의 산을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장마철 홍수에 산사태가 나고 냇가의 물이 넘쳐 집이며 농작물을 휩쓸어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고향을 찾았을 때는 벌거숭이산이 푸름을 얻었습니다. 전쟁을 겪으며 훼손된 산림은 ‘강산을 푸르게’라는 구호와 함께 병아리 손도 보탬이 되어야 했습니다. 봄이면 고장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방공사와 나무 심기에 동원되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오전에 마치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이끌고 냇가나 산으로 갔습니다. 이미 나와 있는 동네 사람들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냇가를 따라가는 등굣길에 미루나무를 심었습니다. 포플러라고도 불리는 미루나무 묘목입니다. 뿌리가 없습니다. 꺾꽂이해도 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천 변을 거슬러 오르면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간격을 벌려 양옆으로 꼬챙이 같은 묘목을 꽂았습니다. 물을 한 바가지씩 부었습니다. 한 친구는 묘목을 거꾸로 꽂아도 된다는 누군가의 말에 거꾸로 심기도 했습니다. 신라 말기의 마의태자 이야기 때문일까요. 금강산으로 향하다 용문사 입구에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나무가 움이 터 큰 나무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설이려니 하지만 친구가 심은 미루나무는 생각과 달리 내 나무와 함께 자라며 키재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큰 키를 자랑하던 나무가 없어졌습니다. 친구들이 심은 나무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이 나무를 사랑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크기를 원했습니다. 고향을 떠날 무렵에는 이미 어른 나무가 되었습니다. 제 그림자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재주에 고무줄을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한낮이면 꼿꼿이 세우는 그림자, 아침저녁으로 한없이 길게 드러눕는 그림자, 늦잠을 자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 게으른 나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여름이면 미루나무 그림자 덕분에 신발과 옷을 벗어놓고 물놀이했습니다.

냇가가 허전합니다. 나무는 사라지고 잡풀들이 가장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을 기금으로 쓰기 위해 그 나무들을 성냥공장으로 팔았다고 합니다. 잘 자라는 대신 수명이 짧습니다. 미루나무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태리포플러가 아닐지 싶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55년 이후이며 1962년부터 전국적으로 13만 그루 이상이 식재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과거 미루나무를 우리 주변에 많이 심은 것은 빨리 자라는 속성수이며 펄프, 성냥갑, 담뱃갑 등의 재료인 효용성이 높은 나무이기 때문이랍니다. 미루나무가 많이 심긴 1960~80년대 우리의 목표는 하루빨리 숲을 푸르게 만들고 모든 국민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산업을 일으키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루나무를 잘 심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리 자라기만 하고 수명이 짧은 나무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는 성냥을 쓰지도, 무거운 목제 상자에 과일과 생선을 담지 않습니다. 사용하기 편리한 종이 상자와 플라스틱 상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산림녹화는 그 효용성을 따져야 합니다. 자원의 사용 가치, 비가 많이 올 경우 땅을 지탱하는 힘,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미적인 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발전만큼이나 산림녹화도 성공한 나라입니다. 단기간에 국토를 푸르게 하는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것 못지않게 국가나 산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림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나도 이에 함께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도시 곳곳의 빈터에 나무 심기를 강조합니다. 자꾸만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길이나 건물만이 덩그러니 들어선 도시는 황량하기만 합니다. 비록 나무를 심을 공간이 부족하다고 해도 찾아내어 한 그루라도 더 심기기를 강조합니다. 푸른 강산 푸른 도시, 마음마저 푸르러지면 좋겠습니다.

쓸모가 없다고 뒷전으로 사라진 미루나무가 그립습니다. 고향을 찾는 추억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나무를 골고루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나무가 좋아하는 곳이 있고, 참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 있습니다. 각자 나무가 클 수 있는 환경은 서로 다릅니다. 이에 맞는 나무를 많이 심어야겠습니다. 이 땅에 나쁜 나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의 욕심된 마음입니다.

박목월 작사 미루나무 동요가 생각납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거쳐놓고 도망갔대요.’

우선 그림으로 미루나무 있는 풍경 감상합니다. 더위를 느끼는 봄이면 미루나무를 찾아 여행을 떠나볼까 새로 나올 달력을 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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