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계절의 감각 20231130
“어느 계절이 좋아?”
“다.”
이러던 내가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럼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요? 좀 있다가 말하겠습니다. 나보다 한 발 앞선 사람의 의견을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매년 후덥지근한 여름을 견디다가 꼭 한 번씩은 탈이 난다. 워낙 몸이 건조해서 살갗에 에어컨 바람이 닿는 것도 되도록 피하다 보니 한여름을 버티는 건 정말 곤욕이다. 벗어도 덥고 씻어도 돌아서면 또 땀이 나는 여름을 참으며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의 송도는 러시아의 시베리아만큼 바람이 매섭고 추워서 ‘송베리아’라 부른다. 외출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어깨를 잔뜩 움츠린 사람들을 본다. 귀마개와 목도리를 둘러 싸맨 사람, 긴 패딩 안에 갇혀 종종거리며 걷는 사람을 보며 겨울을 실감한다. 차가운 음료를 쭉 들이키면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오늘의 날씨를 한껏 들이켜 마신 후 머리의 띵함을 느껴본다. ‘으~ 그래도 추운 게 더 나아!
그의 얼굴을 보니 아직 젊음이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소해 보이는 체격이지만 얼굴에 활기가 돕니다. 전에는 나도 겨울을 좋아했는데, 어릴 때는 맨발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마당의 담장 밑에 쌓아놓은 눈 더미에 구멍을 뚫고 이글루 모양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밤이 되자 이곳에서 잠을 자겠다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늦은 밤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슬그머니 방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얼음집은 공간을 비운 나에게 감기와 몸살을 선사했습니다. 며칠 밤낮을 고생했습니다.
예순 살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계절을 말하면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로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것을 탓할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조금은 불편함에 마음이 쓰일 때도 있지만 4계절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이러던 내가 서서히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 여름이면 저 시원한 나라에 가서 한 달쯤 지냈으면 합니다. 한겨울이 되면 저 더운 나라에 가서 잠시 몸을 녹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의 초엽이 되자 몸이 으슬으슬 춥고 경직되는 느낌이 듭니다. 피부가 뻣뻣해지고 얼굴에 각질이 생깁니다. 평소에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화장품을 바르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요즘 갑자기 피부가 거칠어지고 건조한 느낌이 드네.”
“거 봐요, 그러게 미리 관리를 하라고 했지.”
며칠 후 보지 못한 화장품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웬 것이냐고 했더니만 나를 위해 큰맘 먹고 장만했다고 합니다. 괜한 짓을 했다고 말은 꺼냈지만, 세수를 끝내고 얼굴에 발라보니 촉촉한 감촉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송베리아’ 추우면 얼마나 춥겠습니까. 강원도를 비롯하여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곳이 더 춥습니다. 인천 송도가 ‘시베리아 같은 송도’라고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실제 기온이 아니라 바람 때문입니다. 높은 산이 없어서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게 됩니다. 체감온도가 낮은 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느낌이 문제입니다. 내가 사는 곳은 이웃 서울에 비해 바다가 가까워 여름에는 기온이 낮은 편이고 겨울에는 높은 편입니다. 알면서도 이제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지난여름은 무척 덥게 느껴졌습니다. 인공 바람을 좋아하지 않기에 선풍기를 비롯하여 에어컨 바람을 싫어합니다. 더더욱 부채는 손에 잡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루에도 샤워를 여러 번 해야만 했습니다. 낮이야 움직이면서 더위를 이기지만 밤이 문제입니다. 침대에 누우면 금방 뜨거워지는 몸의 열기에 불화로라도 된 느낌입니다. 이를 모면해 보려고 잠버릇이 좋지 않아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며 마룻바닥을 고집했습니다. 좋은 듯했는데 단점이 있습니다. 포근한 곳에서 자본 습관 때문인지 새벽에 잠이 깨면 온몸이 쑤십니다.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잠이 든 결과입니다.
동화 「원숭이의 꽃신」이 생각납니다. 요즘 맨발로 걷기가 유행입니다. 곳곳에 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발바닥을 지압할 수 있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남들이 하기에 나도 양말을 벗고 걸어보았습니다. 별거 아닐 거라고 했는데 불편합니다.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불편함을 넘어 괴롭습니다. 작은 모래알이 마치 가시라도 된 양 발바닥을 괴롭힙니다. 어렸을 때는 신발이 없어도 동네방네 잘도 쏘다녔습니다.
나이 탓을 할까요. 요즘은 봄과 가을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어쩌겠습니까. 계절을 내 맘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추우나 더우나 움직여야 합니다. 누우면 죽는다고 합니다. BMW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가용을 버리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으라는 뜻입니다. 체력 향상을 위한 일입니다.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요? 가끔은 단점 생각이 나지만 사계절 다 좋다고 해야겠지요. 오감이 느끼는 변화를 사랑하니까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