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소리의 즐거움 20231203
소리란 게 묘한 면이 있습니다. 그보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해야겠습니다. 어느 때는 빗소리나 바람 소리가 음악으로 들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처럼 예민한 청각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주로 조용한 환경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시끄러움을 바랄 때도 있습니다.
어릴 때입니다. 산촌의 환경은 늘 조종하다시피 합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곳에 사람 또한 많을 수 없습니다. 별일이 없다면 절간처럼 조용합니다. 농사철입니다. 어쩌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눈을 찡그리게 하는 햇빛뿐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산비둘기의 소리가 들립니다. 괜히 슬픈 마음이 듭니다. 가까이에서의 울음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할머니가 비둘기의 전설을 말씀해 주셨는데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느낌입니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졌습니다.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습니다.
‘산비둘기도 혼자인 거야.’
집안 식구들은 저녁을 먹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루의 고된 일을 잠재우는 밤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숨소리가 시끄럽습니다. 나 홀로 눈을 감지 못했습니다. 달빛이 문틈을 뚫고 긴 꼬리를 내린 채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빛이 내 눈을 간질입니다. 몸을 뒤척이다 쥐라도 된 양 건넌방으로 갔습니다. 삼촌의 광석 라디오를 살그머니 켰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집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일본어 방송입니다. 심심한데 침묵을 깨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어디입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니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삼촌이 라디오를 만들 줄 안다는 친구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얻어왔어도 몇 번 사용해 보고는 그만두었습니다. 나처럼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처럼 되었지만, 그 후 내 손을 떠나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라디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젊은 병사가 전방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조용한 밤이 싫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라디오를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숨겨서 부대에 들어갔습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들을 방법이 있을까 하고 궁리를 했습니다. 전파 수신에 간첩으로 오인될 수 있겠다는 염려에 상급자들의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부대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단파방송이어서 수신이 어려웠습니다. 잘 들리는 곳을 찾아 물색하다 보니 산꼭대기에 이르렀습니다. 막사에서도 들을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하다 전선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통신용 전선, 즉 삐삐선이라 불리는 전깃줄입니다. 이를 산꼭대기에서 늘려 막사의 지붕에 이르게 했습니다. 밤이면 가슴을 졸이며 틈틈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휴가를 나온 사이에 장마로 인해 물난리가 났습니다. 막사의 지붕에 비가 새면서 실내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전선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선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지붕이 잘못됐나 봅니다. 곳곳이 얼룩지고 곰팡이가 피어났습니다. 그 속에 라디오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소행으로 밝혀져 선임 부대원들이 떠나기 전까지 시달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와 나의 이야기는 퍽 오래전 일입니다. 1950·60년대이니 지금의 세대들은 그런 일도 있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아니야 할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입니다. 아들이 퇴근길에 스피커를 가지고 왔습니다. 친구가 새것을 구입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때까지 써보라고 주었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사고 싶다며 수소문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나와 달리 소리와 맛에 예민한 편입니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이면 기기와 관계없이 듣다 보니 그게 그거지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보니 둔한 감각에도 스피커의 음질이 좋았습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제법 값이 나가는 거라고 합니다. 두꺼비가 황금 옷을 걸친 기분입니다. 소리에 둔한 나도 음질의 차이를 발견한 순간입니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비둘기의 울음 대신 꾀꼬리의 지저귐을 귀에 담는 순간입니다. 오늘 밤에는 모처럼 ‘추억의 라디오 시그널 음악’을 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