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낮에 나온 반달 20231204
아내와 장을 보러 가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하기는 해도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껍습니다. 얼굴에 추위가 서려 있습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마스크 생각이 났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없습니다. 입 주위로 손이 갔습니다. 움츠러든 어깨를 폈습니다. 좀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올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올 때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지금의 온도가 영상입니다. 며칠간 영하의 날씨를 보였는데 기온이 올라갔다는 생각에 가벼운 옷차림을 한 게 문제입니다. 싸늘한 바람이 붑니다. 몸을 한차례 흔들고는 씩씩하게 걸음을 옮깁니다. 뒤따르던 아내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저기를 봐요, 반달이네.”
낮에 나온 반달입니다. 파란 하늘에 희미한 구름처럼 떠 있습니다.
저 달은 왜 돌아가지 못한 걸까, 밤새 추위에 떨어서 늦잠이 들었을까. 햇살에 몸을 녹이려는 생각일까, 밤새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낮에도 머물러 있는 것일까. 생각은 자유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트에 다다랐습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아내가 달을 보며 내내 흥얼거렸습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학교 다닐 때 실기 시험을 자주 보았답니다. ‘섬집 아기’의 노래도 흥얼거립니다. 담임선생님이 노래를 즐기고 제자들의 노래 듣기를 좋아하셨던 분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조별로 대항전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나는 실기 시험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음악 시간을 빼먹지 않고 오르간을 열심히 친 선생님 덕분입니다. 오르간에 빠졌나 봅니다. 노래를 익힐 때까지 시간 내내 쉬지 않고 건반을 짚으셨습니다. 시간 중에 크게 더 크게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선생님은 풍부한 성량이 노래의 으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반에서 성악가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가수가 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존경하는 제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가수는 아니지만 가수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답니다. 장사를 하는데 시장에서는 알아준답니다. 전국 노래자랑 대회에서 입상했고, 덕분에 가끔 이곳저곳에서 초청하자 팬도 생겼답니다. 노래방에만 가면 이 친구가 마이크를 독차지합니다. 그의 주장입니다.
“별거 아니어, 열심히 불러대면 되는 거여. 한 곡을 가지고 천 번을 불러봐라, 가수 안 되는 사람 있나!”
아내가 말했습니다.
“낮에 나온 반달 가사의 제목이 뭐지요?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가사의 제목이 뭐지요? 반달,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이 노래를 불러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가사를 잊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해가 중천인데도 물러나지 않은 반달이 사라질까 아내의 노래를 따라 속으로 흥얼거렸습니다.
아내의 물음입니다. 작사 작곡자가 누구더라? ‘윤석중’하고 말했습니다. 반달의 작사자입니다. 한동안 동시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쓴 사람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반달의 가사를 쓴 사람은 분명 윤석중, 곡을 만든 사람은 홍난파입니다. 어느 반달이냐가 문제입니다. 우물쭈물 넘겼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낮에 나온 반달은’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 ‘푸른 하늘 은하수’는 윤극영 작사 작곡, ‘섬 집 아기’는 한인현 작사 이홍렬 작곡입니다. 아내가 혹시 물어올까 해서 확인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이 듭니다. 노랫말 속에 그 시대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의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설날, 고드름, 귀뚜라미, 따오기, 등 수많은 동요가 이때 작곡되었습니다. 「반달」의 가사 2절의 끝부분에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노랫말처럼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어린이들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용기와 희망을 비쳐주는 뜻있는 동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을 보고 밖으로 나왔더니 반달이 사라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노래도 함께 따라갔나 봅니다. 아내의 입도 조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