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96. 크리스마스의 기억 20231206

by 지금은

12월 1일 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었습니다. 달력이 한 장 남았는데 무엇을 할까 하다가 문득 크리스마스 생각이 났습니다. 나에게는 크리스마스의 정겨움이 없지만 이때가 되면 마음이 약간 들뜨곤 했습니다. 이유라면 주위 사람들 때문입니다. 종교에 심취했다거나 예수에 대한 큰 사랑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가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기곤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삼촌이 군대에서 신던 큰 양말을 추녀 가까이 있는 벽에 걸어놓기도 했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언제 다녀갈지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며칠을 두고 일찍 잠에서 깨 양말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양말에 담긴 선물은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 산촌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올 수 있겠어, 우리 동네는 자전거도 차도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썰매는 눈이 쌓이고 바닥이 매끄러워야 하는데 가파른 산길뿐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하늘로도 썰매를 타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길은 다 다닐 수 있나 봅니다. 그 뒤로도 한 차례 양말을 걸어놓았지만, 선물이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나와는 인연이 없나 봅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크리스마스 전날입니다. 정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눈이 앞을 가릴 정도로 내렸습니다. 소나기가 내리듯 퍼부었습니다. 앞산의 나무들이 눈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치우는 것뿐입니다. 남자 어른들이 집이 무너질지 걱정이 되어 초가지붕에 올라가 눈을 쓸어내렸습니다. 이 집 저 집 온 식구들이 집안의 눈을 치우기에 바쁩니다. 아침을 먹고 눈을 쓸었는데, 저녁나절에 또 삽과 빗자루, 삼태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한참 눈을 치운 다음 쉬고 있는데 사립문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앞을 가려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움직임으로 보아 방앗간 집 아저씨라는 느낌입니다. 뚱뚱한 차림에 털모자를 썼습니다. 외양간 앞의 추녀 밑에 이르자 몸을 흔들며 눈을 떨어냈습니다.

할머니가 가까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누구야, 눈이 이렇게 쏟아지는데.”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입니다. 편지를 전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왔습니다.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낯 모르는 국군 아저씨가 나에게 보내 엽서입니다. 크리스마스와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더욱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라는 내용입니다. 편지 자체가 선물인데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방금 쪄낸 고구마를 내놓으며 쉬어가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이곳저곳 전해야 할 것이 많답니다. 손을 녹인다며 한 개만 손에 든 채 사립문을 지났습니다.

오늘은 아침을 먹자 길을 나섰습니다. 배움터로 향합니다. 셔틀버스가 있지만 걷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미세먼지가 많다는 예보가 있어 아내가 만류해도 마스크를 쓴 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길을 건넜습니다. 큰 건물의 앞에 이르자 많은 물건이 광장에 놓여 있습니다. 큰 울타리를 둘렸습니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설치하는 외양과 쌓인 물건을 보니 대형 크리스마스를 추리를 세우는 게 분명합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어제와 그제는 공원 입구와 큰 상가 앞에 추리가 만들어졌고 오색 전구가 주위를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도시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습니다. 구세군 냄비가 여기저기 등장하고, 불우이웃 돕기를 위한 모금행사와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기독교가 지금처럼 크게 번성하지 않았음에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무렵에는 분위기가 떠들썩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학생들이 새벽까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골목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이런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사라졌습니다. 거리 자체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IMF의 시련은 이것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로는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흔히 보던 추리가 자취를 감추더니 얼마 전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의 여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지 못하고 사람들의 만남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올 들어 서서히 기지개 켜는 느낌이 들지만, 아직도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보이지 못합니다.

나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른이 되어서야 받았습니다. 철이 들면서 양말을 걸지 않았고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무엇인지 기억에는 없지만 받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 생각이 났습니다. 수면 양말입니다. 잠자리를 편하게 해서 건강히 지내라고 퇴직하던 해 동료가 주었습니다. 발을 내려다봅니다. 양말목의 고무줄이 늘어났군요. 오래 신었습니다.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올해는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야겠습니다. 이름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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