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923

303. 살다 보니 20231211

by 지금은

‘카톡’ 알림 문자입니다. 글쓰기 동호회에서 한 사람이 보냈습니다. 그의 글 주제는 ‘아끼다 보니’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버리지 못한 사연입니다. 장에 옷이 가득 차 있는데 막상 입으려니 마땅한 게 없습니다. 노년에 접어드는데 처녀 적 옷이 아직도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하다 보니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끼다 찌로 간다는 말이 맞는다며 구입하면 부지런히 소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뒤늦은 깨달음이기는 해도 맞다는 생각이 들기에 호응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는 한동안 등산에 빠져든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부추겨 서울 근교의 산을 시발점으로 전국의 이름 있는 곳을 다녔습니다. 이때 등산화를 몇 켤레나 소비했습니다. 이후의 일입니다. 산에 가는 일이 점차 줄어들자, 신발이 장안에 갇혀있게 되었습니다. 추석 무렵이 되자 벌초하러 가기 위해 새 등산화를 꺼내 신었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벌초를 마치고 집으로 오려는데 발의 느낌이 이상합니다. 뒤창이 신발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몇 걸음 걷자 점점 틈이 벌어집니다. 털컥털컥 소리가 납니다. 어쩔 수 없이 끈을 풀어 임시방편으로 고무바닥과 몸체를 묶었습니다. 시골이고 보니 신발을 구입할 수가 없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구두는 어떻고요, 신사화를 샀는데 직장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행사에 참석할 일이 흔하지 않아서 신어야 할 기회가 드물었습니다. 평소에는 간편한 운동화 차림으로 외출했습니다. ‘어쩌지요.’ 밖으로 나가 얼마를 걸었을까. 뒤축이 주저앉는 느낌이 들기에 발을 들어보았더니 사방으로 실금이 가 있습니다. 다시 힘을 주어 바닥을 딛자, 연탄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듯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습니다. 신발을 벗어 뒤집어 보았습니다. 고무가 삭을 대로 삭아버렸습니다.

어릴 때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빈집이 빨리 무너진다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으면 망가질 염려가 없으니 오래갈 것이라고 여겼는데 반대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아낸 일이지만 집에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생활하다 보면 이곳저곳 고치며 살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만년필이 일곱 개나 됩니다. 모두가 새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물을 받았는데 쓰기에 아깝다고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서민들이 애용하는 볼펜의 편리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수십 년이 지난 때입니다. 어느 날 아껴서 뭐 하냐 하는 생각에 잉크를 넣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튜브가 삭았습니다. ‘이럴 수가’ 지금까지 보관한 게 아쉬워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이런 게 한둘이 아닙니다. 글쓴이의 이야기처럼 집안 곳곳에 해결해야 할 품목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옷입니다. 몸집이 불어나다 보니 작아서, 유행이 지나서,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 내 몸이 줄어들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입니다. 그릇도 문제입니다. 필요해서 사고, 예뻐서 샀는데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큰 행사라도 치르게 되면 써야겠다는 마음에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놓았습니다. 평소에 사용해도 되겠지만 꺼냈다 넣었다 하기가 번거롭습니다. 쓰는 것만 쓰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그릇들이 나타났습니다. 역시 유행이 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투박하고 무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물건이 쌓여갑니다. 집이 좁아 보입니다.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8평 집에서 신혼살림을 했는데, 몇 년 후에 25평으로 이사했습니다. 지내보니 좁습니다. 30평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같은 생각입니다. 또 이사해야 할까, 이제는 번잡스럽게 이사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방안에도 물건, 주방에도 물건, 거실에도 물건 가득, 사람이 주인인지 물건이 주인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여보, 우리 마음먹고 짐 정리를 좀 합시다.”

“좋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버린 거라곤 쓰레기와 낡아서 못 쓰게 된 몇 가지뿐입니다. 아직은 쓸 수가 있어서, 아까워서…….

어제는 모자를 샀습니다. 장에 모자가 수북한데 변신을 해보겠다고 다른 모양의 모자를 쓰고 집으로 왔습니다. 줄이려고 했는데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따뜻해 보인다고 하나 더 사라고 아들이 부추깁니다. 내년의 버킷에 넣어야 할까요. 이사할 생각일랑은 접어두고 최소한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리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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