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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15. 연말에는 잘한 것 떠올리자 20231219

by 지금은

새해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이를 말해주듯 오늘은 오후부터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사이 많은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하늘이 흐리기까지 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길도 가볍지 않습니다. 새로 산 신발이 아직 적용이 되지 않았는지 남의 신발을 신은 듯합니다. 며칠은 신어야 발과 친해질 것입니다.

도서관에 가까워올 즈음 전화기에서 짧고 높은음이 울립니다. 동창회 모임을 알리는 문자입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오늘은 가야 할지 말지 망설여집니다. 만나고 되돌아설 때면 가끔 찬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동창 대부분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지만 몇 친구는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저들은 잘살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크게 낙심할 일도 아니지만 내가 좀 모자라고 나태한 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평소의 생각으로 나는 그저 보통사람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친구도 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늘 힘들어합니다. 젊어서 남에게 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쳐오다니 좌절을 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친구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공장을 전전하다가 일찍이 운전을 배웠습니다. 근면 성실하다 보니 개인택시 면허를 따고 근사한 집도 마련했습니다. 이제는 넘볼 것이 없다던 그가 암에 걸렸습니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없는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한동안 좌절하고 동창모임에도 참석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문병도 거절하던 그가 전번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주위의 격려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치는 되지 않았지만 희망이 보입니다. 항암 치료를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점차 회복의 기미가 보입니다. 농담을 좋아하던 친구가 농담을 찾은 걸 보면 마음에 여유를 찾은 게 분명합니다.

“올 거지, 똥주머니 찬 이 형님 보고 싶지 않아.”

뜸을 들이자 농담을 서슴없이 합니다. 너희들이 마음 써준 일로 형수님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합니다. 거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마, 형수는 무슨 형수야, 제수씨지. 어찌 됐던 생각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라.”

글을 읽다 보니 누군가 송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후회의 생각보다 올해 잘한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기로 했답니다. 그동안의 마지막 날을 두고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을 뉘우침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무엇일까? 올해 남긴 것이 있는가? 남과의 만남이 줄어든 대신 나름대로 자신을 위해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점차 약해지는 체력을 기르고 아픈 몸을 이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해봤습니다. 특별히 좋아진 것은 없다고 해도 현상유지는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지나면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겉으로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 책을 다섯 권이나 손에 넣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실린 글입니다. 책 한 권이 오로지 내 이름으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부분 부분 공간을 채웠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작품 사진은 아니지만 각각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남의 말을 빌리면 사진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요. 길게 때로는 짧게 글을 입혔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참석하여 오랜만에 내 자랑을 늘어놓아야겠습니다. ‘말 안 하면 노는 줄 알아요’ 글쓰기 공부를 할 때 강사가 한 말입니다. 그의 책 속에도 그 말이 들어있습니다. 요즘은 나를 알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나도 동참을 해볼까 합니다. 글을 쓴 게 제법 많이 모였다고 말했더니만 ‘블로그’를 운영해 보라고 합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정작 도움을 청했더니만 바쁘다며 거절을 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해보랍니다. 그의 말에 서운함은 없습니다. 어차피 내 것으로 하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가 처음에는 나를 괴롭게 하지만 나중에는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야, 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야. 아무나 초대하지 않지만 너희들이니 특별히 초대 하마.”

말이 앞서다 보면 행동도 따라가리라 여겨집니다. 그러고 보면 내년에 할 게 점점 많아집니다. 하모니카 연주가 있고, 글도 더 많이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뭐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게 보람된 노후가 아니겠어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송년회 모임 끝에 차 한 잔 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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