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늘 같은 것은 아니기에 20231219
“왜 찔러요.”
어느새 다가왔는지 옆에서 내 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내입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흠칫했습니다. 나는 분명 무엇인가 찌르고 있습니다. 손에는 작지만 송곳이 들려 있습니다. 아내가 보았을 때는 이미 송곳이 물체의 몸에 깊이 박혀버렸습니다. 힘을 주어도 더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송곳의 몸통이 끝까지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내가 염려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못쓰게 될 게 분명하다고 단정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정확히 공의 중앙을 찔렀습니다. 멀쩡한 것을 찔러버렸으니, 공은 제구실 못 할 것입니다. 말없이 송곳을 뺐습니다. 손으로 공을 힘주어 눌러봅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나는 며칠 전 공원을 지나다가 화단 깊숙이 박혀있는 공을 주웠습니다. 주웠다기보다는 작은 나무들 사이에 가려진 채 빠끔 내민 것을 꺼냈을 뿐입니다. 누군가 갖고 놀다가 실수로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간신히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몸을 숙였습니다. 나뭇가지들이 보초라도 되는 양 내 몸을 막아섭니다. 썩은 나뭇잎을 들췄습니다. 드디어 공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야구공이군요. 몸을 일으키고 나무들 사이에서 발을 뺐습니다. ‘이게 또 뭐야’ 발을 뺀 자리에 희끄무레한 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쌍둥이입니다. 하필이면 같은 장소에 숨어있을 줄이야. 누렇게 변색한 공을 물에 닦았습니다. 몇 날을 그렇게 지냈는지, 몇 년을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색이 누렇게 변색하였을 뿐 겉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몇 군데, 가시에 찔린 듯, 날카로운 돌에 긁힌 듯 흠집이 있습니다.
발로 차 보았습니다. 야구공의 느낌처럼 둔탁하게 굴러갑니다. 외양은 야구공이지만 힘을 주면 신축성이 느껴집니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모습이지만 두 공의 차이가 있습니다. 신축성입니다. 하나가 더 부드럽습니다. 내가 송곳을 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침을 놓으면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허황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쌍둥이이니 신축성이 같아야지 않을까 합니다. 실밥의 가운데를 따라 몇 번이나 찌르기를 반복했지만, 더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공을 송곳으로 찌르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예전 같았으면 정신 나간 짓을 했다고 한 소리 들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아내도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공 속에는 공기가 땡땡하게 들어있다. 늘 부풀어 올라와 있어야 구실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축구, 농구, 배구, 핸드볼, 꼬마 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노는 탱탱볼이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이 발전하듯 공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고무 튜브를 감싸던 가죽이 이제는 서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공의 겉 부분에 운동화 끈을 꾀듯 끈을 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튜브를 안에 넣고 바람을 넣은 다음 끈을 조입니다. 바람이 빠지거나 터졌을 때 끈을 풀고 터진 부분을 때우거나 바람을 넣은 다음 다시 조였습니다. 풍선에 바람을 넣듯 말입니다. 지금은 바람을 넣을 수 있는 부분인 배꼽이 겉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주삿바늘처럼 바늘을 찔러 넣고 바람을 넣습니다.
내가 지금 송곳으로 찌른 공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속에는 공기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겉면이 낡아 헤어진 공의 껍질을 벗겼는데 속에 또 다른 공이 숨어있습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예전에는 딱딱한 공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신축성이 있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외양도 크기도 다양합니다. 스펀지 공도 있습니다. 도지 볼이 있습니다. 몸에 맞아도 덜 아프게 만들어졌습니다.
공을 아내의 손에 넘겼습니다.
“딱딱하네, 야구공을 왜 찌르고 그래요.”
“그게 아니고, 부드러워지라고…….”
집에 아이는 없어도 공은 많습니다. 내가 공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축구, 배구, 농구, 야구, 도지 볼, 스펀지 공, 탁구, 배드민턴 셔틀콕, 크고 작은 탱탱볼. 뭐 하나 내세울 만한 장기는 없지만 가지고 노는 재미입니다.
요즘은 겨울이고 보니 바깥 운동보다는 실내에서 움직임이 많습니다. 탁구에 빠졌습니다. 스윙 연습을 하는데 중학교 때 생각이 났습니다. 탁구 라켓이 귀한 시절입니다. 체육 선생님이 주먹 크기의 조약돌을 하나씩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스윙의 기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송곳으로 침을 놓은 공이 꼭 고민합니다. 양손에 하나씩 들었습니다. 왼손 연습, 오른손 연습입니다. 한쪽만 하면 되지 무슨 양손, 하지만 두 손을 다 쓸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왼손 글씨를 쓰기도 하고 오른손 글씨를 쓰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엉뚱한 생각이 아침부터 공에 침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