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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335. 식탁 위의 풍경이 달라졌어요. 20231231

by 지금은

어제 식판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새것이라 산뜻해 보입니다. 식판의 재질이 여러 가지여서 고민 끝에 스테인리스로 된 것을 골랐습니다. 관리하기가 수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 중, 소, 중 가운데 것을 선택했습니다. 수저를 놓는 곳이 없기는 해도 그릇이 오목해서 반찬이나 국을 담기가 편합니다. 개시를 해야겠습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식판이 왔네.’

며칠 전부터 그릇가게를 둘러보고 집기 매장에도 들렸습니다. 발품을 팔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식판이 보입니다. 생김새와 크기, 재질 등이 제각각입니다. 같은 물건임에도 값의 차이가 납니다.

아들이 좀 늦는다기에 우리 먼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탁의 분위기가 달라 보입니다. 밖에서는 식판을 사용하는 때가 자주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식사를 하고 나자 아내가 걱정스러운 말을 합니다. 국을 제외하더라도 1식 4찬인데 큰일이랍니다. 배움이 있어 복지관이나 평생학습관을 갈 때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미리 며칠 동안의 식단을 게시해 줍니다. 참고해야겠다며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는 아내를 향해 말했습니다.

“뭘, 걱정합니까. 집에서 먹는 반찬이 늘 4가지가 넘는데.”

김치, 멸치, 김, 달걀, 어묵, 나물, 채소……. 주섬주섬 나열하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식기가 달라졌으니 반찬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식판을 처음 손에 든 때는 군에 입대한 날입니다. 비가 사뭇 퍼붓던 여름입니다. 배식을 받은 후 어떻게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조교들의 휘몰아치는 말씨와 행동에 주눅이 들대로 들은 상태이니 모든 행동이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초를 정해주고 정렬할 것을 명합니다. 식판을 닦으러 수돗가로 갔는데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누군가 울타리에 자라고 있는 댑싸리 순을 꺾어 쏟아지는 빗물에 그릇을 닦습니다. 식판을 하나둘 하늘에 내맡깁니다.

식판을 검사한 조교는 우리들을 연병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식판의 위생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입니다. 나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빗속을 뚫고 질벅거리는 연병장을 몇 바퀴 돌았습니다. 조교의 구령에 따라 목이 터지도록 복창합니다. ‘복창불량’이라는 말이 떨어지면 몇 바퀴는 덤으로 돌아야 할 게 분명합니다. 빗물이 군복을 적시고 살갗을 간질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홍수로 인해 우리가 부대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차량통행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수도관까지 쓸려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해는 기록적인 홍수였습니다. 부대는 섬처럼 물에 고립되었습니다. 다리가 복구되기까지 일주일 이상은 영외 출입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군인들의 부식은 어쩔 수 없이 헬기에 의해 전달되었습니다. 여름이라도 추웠습니다. 물기에 눅눅해진 실내는 물론 물에 갈아입을 옷이 없는 상태에서 젖은 군복은 천근만근 무겁고 차갑기만 했습니다.

때가 지날수록 식판에 올린 음식은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상급자들의 눈을 피해 불만을 쏟아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의 식판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이지 몇 첨과 보리밥입니다. 그도 사나흘이 지나자 참외지로 바뀌었습니다. 국도 없는 1식 1찬입니다. 다리가 복구되자 그동안 고생했다며 특식으로 건빵을 한 봉지씩 주었습니다. 보통 때의 두 배나 되는 봉지입니다. 배가 고프고 평소에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쉴 새 없이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야영 훈련도 불편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식판을 내밀고 빗물과 국물을 함께 받아야 했습니다. 철모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섞어가며 식판의 음식을 삼켰습니다.

학교에서도 식판이 사용되었습니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일입니다. 선생님들이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급식지도입니다. 한동안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에서 배식이 이루어졌지만 식당이 마련되고는 아이들을 인솔해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아이들이 익숙해지자 일부의 이탈자가 생겼습니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식을 받아 의자에 내려놓고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특히 편식을 하는 아이들 중에 발견되는 일입니다. 지도하는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편식을 고치려는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와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냥 놔두시면 좋겠습니다, 억지로라도 버릇을 고쳐주셔요.’

생각이 서로 달랐습니다. 아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들의 편식식입니다. 반찬 그릇을 앞에 두고 함께 먹을 때는 별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식판에 아내가 자신들의 몫을 담아주니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식판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야 하니 일어난 일입니다. 먹기 싫은 반찬인데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아들의 얼굴이 찡그려듭니다.

“이 나이에 편식을 해야겠어.”

어미의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설거지를 하기에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식판의 좋은 점이군요. 늘 정해진 양을 먹고 편식을 하지 않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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