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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1. 사춘기 아니 반항기? 20220110

by 지금은

책을 읽다 보면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순탄하게 지나가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속앓이 하고 때로는 가출하기도 합니다. 나는 주위의 사람들 이야기나 책 속에서 각양각색의 일탈을 경험한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지금도 자신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진로를 고민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 년 전의 일입니다. 함께 문학을 공부하는 동료의 손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락에 빠져 학교를 수시로 결석하는 관계로 부모와 자식 간에 불화가 계속되고 있다 합니다.


“학생이 학교를 빠졌습니다.”


담임선생이 어느 날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학원에서도 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피시방에 있으려니 하고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아이는 없습니다. 식구들이 찾아다니다 보니 거처를 자주 옮기는 모양입니다.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낯선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모인 곳에는 상담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습니다. 손자를 아끼는 할아버지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연배의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의해 좋은 방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와 나는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교육자로 생활했으니, 남들보다 자기 자식을 잘 가르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옛말에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학식이 높은 선비이면서도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교육을 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의 신식 학교가 생겨나고부터는 자식을 정규의 틀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나는 말을 입 밖에 낼까 말까 하다가 끝내는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몇 년이 지나갔습니다. 내 생각이란 먼저 그의 마음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 손자의 마음을 돌리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소원이라고 하니 환경을 만들어 주어 안정감을 찾도록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음은 공부와 병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내 자식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주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에는 선 듯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나는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교육자의 길을 걷기를 바랐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게임 이야기 후 동료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손자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리라 기대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반항기를 거칩니다. 마음 앓이라 말하면 어떨까. 사춘기가 점차 낮아지더니 이제는 중2병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맘때쯤이면 대부분 가정이 긴장하게 됩니다. 6학년 때 이미 과정에 접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도 반항기가 있었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반항기가 있었습니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뭐 그렇지만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나갔습니다. 궁핍한 살림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반항기를 이겨낸 것은 스스로의 힘입니다. 답답하다 싶을 때는 홀로 조용한 곳을 많이 걸었습니다. 지금도 사춘기일까요. 종종 다리가 아프도록 걸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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