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울증을 쫓아내야 해 20220115
어제오늘은 종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도, 수영해도 글을 쓰려고 해도 불안한 마음뿐입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머리가 뒤숭숭할 뿐입니다. 무엇을 읽었지? 한 장을 넘겼지만 금방 앞부분은 먹통입니다.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눈만 글자를 따라갔습니다. 수영은 오늘따라 호흡이 가빠집니다. ‘천천히 힘을 빼고’ 주문을 외우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코로 입으로 몇 차례 물을 마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서재로 침실로 거실로 발을 옮겨보지만,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나를 내쫓을 사람이 없지만 발걸음을 서성입니다. 도서관이라도 가볼까 하고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어제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찌푸린 하늘입니다.
코로나는 벌써 3년이나 우리 곁에 머물러 떠날 줄을 모릅니다.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국민들 대부분이 방역에 동참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전염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의 억지력에 발생빈도가 낮아지다가도 틈만 보이면 어느새 급속도로 세를 불립니다. 공기에 의한 전염이 되니 되도록 사람과의 거리를 두라고 합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잘 지켜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인내심이 줄어듭니다. 이제는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며칠 전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말했습니다.
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나비 정원에 가볼까.”
아내는 선 듯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목둘레를 감쌉니다. 잔뜩 흐린 날씨는 우리를 반기려는 눈치가 아닌가 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도리를 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아내를 돌아보았습니다.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니 오늘도 그렇습니다. 발걸음과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겨울의 산은 삭막합니다. 설경이라도 보면 좋으련만 이 겨울은 눈이 귀합니다. 산 밑의 공원도 그렇습니다. 나무는 벌거벗었고, 비닐하우스의 풍경은 더욱 초라합니다. 관람객을 위한 시설물들이 하나같이 시들다 못해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기를 잘못 택했습니다. 적어도 늦가을은 되어야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속에는 나비들이 날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산 나비를 본다는 것은 그저 꿈입니다. 대신 나비박물관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나비 생태 그림과 표본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도시에서만 생활해서인지 신기한 눈빛입니다. 나와는 달리 전시물들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시골 사람과 도시 사람의 차이인지 모릅니다.
한 곳에서 내 눈이 멈췄습니다. 익숙한 사슴벌레입니다.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한살이의 과정이 차례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어렸을 때 여름이면 사슴벌레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사슴벌레나 풍뎅이를 잡고 싶으면 앞 산기슭에 있는 참나무숲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이슬을 먹고 산다고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사슴벌레를 집에서 키우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대로 이슬을 먹여야 합니다. 밀집으로 여치 집을 엮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망입니다. 사슴벌레를 넣고 저녁이면 하늘에 모습을 드러낸 사립문에 매달았습니다. 분명 밤에 내리는 이슬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사립문으로 다가갔습니다. 여치 집이 눅눅하게 젖어있습니다. 안심되었습니다. 틈새로 내리는 이슬을 먹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슴벌레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풍뎅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잘 키워 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늘 움직여야 하는 생물인데 갇혀있으니 살 수 있겠니?”
사슴벌레의 먹이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생물 시간입니다. 쇠똥구리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님과의 대화 중 사슴벌레의 먹이에 관해도 물었습니다. 이 곤충은 참나무의 수액을 먹고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사슴벌레의 한살이의 과정을 본 일은 없습니다. 기간이 짧은 초파리의 한살이를 보았습니다. 사슴벌레의 성충을 가지고 놀았을 뿐입니다. 여러 가지 곤충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만, 풍뎅이와 사슴벌레의 한살이까지 살아있는 실제로 볼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이들을 집에서 키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동안 흘려들었습니다. 먹이로는 젤리가 좋고, 바닥에 톱밥을 깔아주고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춰 주어야 합니다.
‘심심한데 나도 한 번 사슴벌레를 키워볼까?’
나중의 문제입니다. 관람하다 보니 이 층에 양식코너가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습니다. ‘만 원의 행복’ 떡볶이와 피자를 시켰습니다. 포크를 드는 순간 창밖으로 잉어의 비늘 같은 눈발이 보입니다. 나비면 어떻고 사슴벌레면 어떻습니까. 우울한 시간을 털어낼 수 있다면 그저 만족이지.
옆자리로 옮겨갔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잠시 동화의 시간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의 그림책이 손에 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