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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14. 좋은 일 20220122

by 지금은

휴대전화에 알림 문자가 떴습니다. 채팅 방에서 나와 친구를 하자고 합니다.


‘조은일’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기에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주소창이 있지만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가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고 보니 모르는 전화도 받을 생각이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뭐야, 나 같은 사람과 친구를 하자고, 내 나이가 몇인데.’


상대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초대를 무시하고 나가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보니 대수로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잠시 후 기타 줄을 튕기고 있는데 다시 문자의 알림입니다. 맑은 소리입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형님 저예요. 아들이 장가가요.’


이종사촌의 문자입니다. 왜 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은일’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이용했을까.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사촌의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전화기를 바꾸면서 깜빡하고 입력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어쩌면 좋을까 잠시 궁리하다가 문자로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지내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라 지워버렸어.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 날짜와 장소를 알려줘.’


청첩장이 전송되었습니다.

‘예, 아들이 결혼합니다.’


내가 착각할 수밖에 없게끔 됐습니다. 요즘 원고를 교정 중이니 맞춤법에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좋은 일’이라면 몰라도 ‘조은일’이니 내 추측에는 이름으로 오인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서로 안부를 물어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이종형과는 종종 전화하지만, 그 집 동생들과는 연락이 뜸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형과 소식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집안의 안부를 두루 주고받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편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몇 년 전에 혈압으로 쓰러져 병문안을 간 일이 있습니다. 그 후로 전화를 주고받지 못했습니다. 가끔 안부를 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 불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전화를 잘하지 않습니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려니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나, 얼굴을 보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주고받는 말도 적다 보니 어쩌다 만나면 서먹하기만 합니다. 결혼식에는 틀림없이 참석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오래전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작은 이모님 댁에서 연락이 오면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이모님 자녀들과는 서로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맞춤법에만 집착했기 때문일까. ‘조은일’ 아니 ‘좋은 일’입니다. 내 자식은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종종 인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하나같이 늦었다고 말합니다.


“뭐 하고 있어요. 빨리 보내요.”

“그렇게 말입니다.”


“중이 제 머리 깎나요.”


아들만큼이나 나 또한 재주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 사람이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건강하고 사람 됨됨이만 좋으면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집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해서 외쳐봐야 할까 보다.


“여기 괜찮은 신붓감,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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