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첫 문장이래요. 20220420
‘첫 문장이란다.’
멋모르고 시작한 글쓰기가 가끔 마음을 뒤흔듭니다. 글을 쓰고 나서 다가오는 의문입니다. 글을 완성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문장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글 전체의 맥락이 제대로 연결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한테 일기 쓰기, 위로의 편지 쓰기를 지도받은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 시간과 국어 선생님이 있었지만, 글쓰기를 한 기억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역시 편지를 써본 것뿐입니다. 대학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연필을 들기는 했지만, 내용을 끝까지 완성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글짓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익혀야 할 수많은 것들이 내 앞에 다가왔습니다. 초등교육은 해박한 지식을 요구합니다. 교사 한 사람이 전 과목을 가르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 중 내가 국어 못지않게 아이들 지도에 힘들어했던 과목은 음악지만 이 이야기를 접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를 비롯하여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입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숙제가 있었지만, 하루하루의 일기를 쓰기는 기본 숙제입니다. 국어에서 나의 문제점은 글쓰기와 띄어쓰기입니다. 나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빨간 글씨로 수정을 해주면서도 가끔은 내가 올바르게 첨삭지도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올바른 띄어쓰기를 습득하기 위해 국어 문법에 관심을 가졌지만 끝내 완성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내 글을 수정하면서 가끔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내 머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띄어쓰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한동안 ‘KBS TV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한 일이 있습니다. 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가하지만, 그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비교해 실력이 한 단계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제를 모두 통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 실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아이들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냐고 자문을 한 일이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때는 나도 ‘우리말 겨루기’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말 겨루기에 우승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는 했지만 끝내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TV에서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띄어쓰기와 매끄러운 문장을 구성하기 위한 고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의 어느 날입니다. 고학년 담임선생님 한 분이 출장으로 교실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 해 저학년을 담임했던 나는 보결 수업을 했습니다. 반장은 수업이 끝나자, 친구들의 일기를 걷어 선생님의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놓았습니다. 남의 반 아이들의 일기임에도 문득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텅 빈 교실이라 잠시 마음을 놓고 공책을 열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의 글씨는 담임선생님의 글씨만큼이나 깔끔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반듯한 글씨 아래 줄에 수정해야 할 글자, 붙여쓰기, 띄어쓰기, 각종 부호와 첨가될 글자를 삽입하고 의견란에는 격려의 말을 붉게 수놓았습니다.
‘와!’
공책을 덮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글짓기 지도에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던 나를 그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책 저책 관련 서적을 한동안 탐독했으니, 이론으로야 그럴 듯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허구에 불과함을 스스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글쓰기입니다. 노년의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고 싶어 여러 분야를 섭렵해 본 끝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내 재능을 찾기 위해 한동안 미술, 음악, 체육, 철학, 문학의 세계를 기웃거렸습니다. 종래에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문학 분야에 안착했습니다. 멋모르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던 글이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평도 들어야 했습니다. 작품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나는 아직 내 글에 대해 호된 평을 들어본 일은 없습니다. 늘 내 글이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전문가에게 평을 청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글을 스스로 평합니다. 가끔은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때로는 제멋에 빠져 흥분합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입니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인식입니다. 남이 말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냉철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어찌하겠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조금만 젊었어도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늘 생각보다 실천이 뒤늦다는 것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건성건성 쌓아 올린 벽돌의 틈을 메워야 합니다. 참고될 책을 찾습니다. 인터넷에 접촉합니다.
시, 동시, 소설, 수필, 동화……. 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첫 문장이 중요하다.’
이왕 쓴 글이라면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답니다. 나는 그동안 글을 쓰면서 첫 문장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글 전체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날 글쓰기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자신이 공부할 때의 경우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글쓰기 과제물을 제출하자 지도 교수님이 글을 읽어보더니 한 문장만 남기고 남은 글들을 모두 지우고 다시 쓰라고 했다 합니다. 전에도 방송국 예비 작가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강의하는 작가들 가운데서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느덧 세뇌된 느낌입니다.
‘첫 문장이 전체의 글을 살리고 죽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나요.’
묵혀 둔 글에 다시 눈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