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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01. 2024

2022 어느 날

44.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 20220510

꼭 하나 있습니다. 내 문학적 소양을 키워주고 이끌어 준 고마운 물건입니다. 하지만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뒤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세상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무엇일까? 여러분은 무엇을 제일 먼저 버리고 싶습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정했으면서도 막상 닥치고 보면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


버리기는 아깝고 놔두자니 애물단지가 아닌가.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야 하는 마음에 하나둘 쌓아놓다 보니 어느새 집안은 물건들로 가득 찼습니다. 결혼한 지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입니다. 이것은 결혼 초 살림살이, 이것은 아이의 돌 때, 또 다른 것은 첫 여행지에서 구입한 물건…….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막상 버릴 것이 없습니다.


입춘이 지나자, 집 안 대청소를 하기로 했습니다. 겨우내 묵은 먼지와 찌든 때를 벗겨내는 김에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할 셈입니다. 각자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들을 끄집어냈습니다. 거실에 가지가지의 이름들이 모였습니다. 마음에 두지 말고 버리기로 작정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내가 입씨름했습니다.


“이거는 더 입어도 되겠구먼.”


반닫이, 스웨터, 잠바, 셔츠…….


“이 그릇은 버리기 아깝지 않아요? 그때 얼마나 비싸게 산 물건인데.”


바닥에 흩어진 동화책도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아들이 성년이니 별 필요가 없지만 태어날 아기를 위해 다시 진열해 두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결혼도 안 했으니 태어날 아이가 언제 저 책에 눈이 갈지는 모를 일입니다. 결국 집안의 물건들을 밖으로 내보낼 기회를 잃었습니다. 버린 것이라고는 낡은 카펫과 빈 화분 몇 개, 먼지뿐입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광경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쓰레기로 넘쳐나는 어느 주택의 모습입니다. 물건에 대해 강박증이 있는 사람의 집입니다. 밖에서 주워 온 쓰레기와 고물들이 실내를 꽉 채웠습니다. 마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물건이 지붕과 키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들 틈이 없어 보입니다. 대문 밖 담장 가장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살던 식구들은 갈등을 안고 이미 떠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원성은 컸습니다. 악취와 미관이 문제입니다. 계속되는 민원에 동사무소 직원들과 경찰, 사회봉사자, 상담사분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긴 설득 끝에 온갖 물건들이 치워지고 새로운 집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했던 집주인은 결과에는 만족하고 집을 가꾸고 정돈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후로도 몇 차례 이와 비슷한 모습을 방영되었고 때마다 내 시선을 끌었습니다.


우리는 옛날 사람들에 비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집부터 크기가 다릅니다. 옛날의 초가삼간과 지금의 주택을 비교해 보면 우선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초가삼간에 들여놓아야 할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살림살이입니다. 솥, 식구 수에 따른 그릇, 옷 몇 벌, 이불, 작은 장이나 궤짝, 농기구 등입니다. 그들이 생활에 불편을 느꼈을까. 만족스럽다는 생각은 아니어도 순응하는 삶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떨까. 물건이 과잉 생산되고 과소비하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유행에 따라서, 남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서 과시욕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쓰레기장에는 중고의 물건들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멀쩡한 것들, 조금만 손보면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빈자리는 곧 새 물건이 채워질 것입니다.


나는 가끔 동화 속의 삶을 생각해 보는 때가 있습니다. 저 물건들을 가져다 산속에 나만의 왕궁을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바위 밑의 집, 나무 위의 집, 동굴 집, 놀이터도 만들면 어떨까. 많은 사람은 삶이 어렵다 말하지만, 물건도 돈도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


각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는 한때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스트레스가 쌓이자, 이 세상 모든 것이 정지되었으면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잘 곳이 없어도, 입을 것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좀 더 발전된 생각을 했습니다. 한 알의 약으로 백 년을 살 수 있다면, 마음만으로도 변하는 집이 있으면, 생각에 따라 바뀌는 옷이 있다면……. 아직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후 세계에 기대할 만하겠습니다.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의식주입니다. 옷 없이 살아야 한다면 아담과 이브의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집이 없다면 어패류의 삶을 배워야 할까. 먹을 것이 없다면 입을 없애야 할까. 한 마디로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의식주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행위가 문제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립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일인가.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내가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 때문입니다.


끝으로 귓속말을 해볼까 합니다.


“너 말이야, 네가 지닌 것 중에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 꼭 하나 꼽아봐.”


‘오십여 년 전 교지에 내 첫 원고가 실렸을 때 여동생이 사준 축하의 선물.’


나의 만년필은 이후 홀쭉한 몸으로 늘 내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이제는 수명을 다했지만, 마음만으로는 만년을 쓸 수 있는 필기구가 아니겠는가. 깨어나 보렴, 아직도 입 다문 잉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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