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날씨라는 게 20220704
“감자는 하지감자라고 했는데.”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아내가 용케 알아들었는지 메아리가 돌아왔습니다.
“하지감자가 뭔데 그래요.”
“하지에 수확하는 감자가 하지 감자지 뭐.”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감자의 파종부터 수확기까지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한 주가 지났을까, 생각지 않은 감자가 식탁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감자가 맛이 좋다는 말에 날짜를 맞춘 모양입니다. 하지하고도 나흘이 지났으니, 산지에서 하지나 다음 날 때쯤 배송했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감자알이 생각보다 작아요. 분도 없네.”
인터넷을 통해 산지에서 최상품으로 구입했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품은 아닌 듯싶습니다. 상품이라면 적어도 어른 주먹만은 해야 하지 않을까. 꼭 아기 주먹만 합니다. 아내는 상품이라니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합니다. 농사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고 더구나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혹시 조생종이라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상품이라고 말하기엔 선 듯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 후에 나물 몇 가지를 알려 주는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 흔한 쑥과 질경이, 취나물 등을 알기까지는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거쳐야 했습니다. 떡을 좋아하는 아내는 쑥버무리를 직접 해보고는 곧 쑥 사랑에 빠졌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而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입니다.
며칠 후의 일입니다. 감자 이야기가 뉴스에 올랐습니다.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절반입니다. 올해는 가뭄으로 농가의 시름이 컸나 봅니다. 영상을 보니 수확량도 그러려니와 씨알도 좋지 않습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닌가 합니다. 농사는 하늘이 칠이요 농부의 부지런함이 삼이랍니다. 아내의 말도 농부의 사연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미안한 생각과 함께 감사해야 할 일이 생긴 셈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웃집 형제간의 다툼이 기억납니다. 모내기 철인데 나라 전체가 가뭄으로 논밭이 타들어 갔습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가뭄이랍니다. 백 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뭄에 지친 동네 어른들이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며 높은 산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논은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사람들은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모으기 위해 하천 바닥을 팠습니다. 고이는 물을 퍼 나르기도 했습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비가 한줄기 내렸습니다. 도랑으로 물줄기가 비칩니다. 사람들은 서로 물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마을회의 끝에 차례로 물을 나누기 위해 밤을 새웠습니다. 형제의 좌우로 갈린 논을 사이에 두고 물길이 지나갑니다. 둘은 서로 물을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었습니다.
“형님의 논으로 물이 더 가네요.”
“무슨 말, 동생의 논으로 물이 더 가는구먼.”
옥신각신 잘못하다가는 서로에게 상스러운 말을 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여차하면 둘재비라도 할 기세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혀를 끌끌 찹니다. 한동안 등을 마주하고 있던 형제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았나 봅니다.
“동생, 그만 집으로 들어가 쉬게. 내 물고를 보아줄게.”
“아뇨 형님, 형님이 먼저 들어가 쉬세요.”
그들의 눈에는 서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못 믿어하는 빛이 보입니다. 극한 상황에 이르면 형제간에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금은 가뭄이 들어도 그때만큼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천 정비는 물론 수로 시설이 잘 되어있고 관정을 비롯한 양수기의 보급도 잘 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늘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올해는 그때만큼 가뭄이 덜했지만, 하늘의 보살핌은 덜했나 봅니다. 작물 대부분이 실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올해는 배추를 비롯한 채소가 금값입니다. 긴 가뭄 끝에 생각지 않은 지루한 장마 때문입니다. 도시에 사는 나는 일기 변화가 농어민들보다 느끼는 정도가 덜하기는 해도 짜증이 나는 때가 있습니다.
우산 장수는 우산 잘 팔려야 하고, 짚신 장수는 짚신 잘 팔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