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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53. 그 집이 내 집인 걸 20220815

by 지금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뭐 해, 가야지.”


문 앞에서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되돌아섰습니다. 은근히 시장기가 느껴집니다.


맛집,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동네라서 방향감각 무딥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겨우 찾아낸 집은 허름했습니다.


‘언제부터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고…….’


내가 음식의 맛을 느긋하게 느껴본 경우가 선 듯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본 끼니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정확하게 계산해 본 일이 없습니다. 대략 나이에 날짜를 곱하고 삼시 세끼라고 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추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마침 책상 앞에 계산기가 있어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숫자를 눌러봅니다. 대략 어림잡아 팔만 끼 정도가 됩니다. 숫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습니다.


‘이렇게 많았던 거야.’


하루 세끼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모아 보니 대단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먹은 음식의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어떨까. 바쁘게 살았으니 하루 식사 시간을 한 시간으로 잡는다 해도 이만 칠천여 시간이나 됩니다. 그러고 보니 삼 년 이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는 일로 보낸 셈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맛의 묘미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음식을 먹는 동안이나, 끝내고 나서 순간적으로 맛이 있다가 또는 맛이 없다는 느낌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그 느낌도 없이 배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해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음식점을 물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혼자라면 혀를 차고는 아무 곳에서나 한 끼 때우고 말겠다고 하는 심정으로 되돌아설 수도 있겠으나 함께 간 사람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듬성듬성 눈에 띄는 음식점 간판을 눈여겨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습니다. 길을 건넜습니다. 아무래도 먹자골목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큰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들이 스마트 폰을 켜고 음식점을 탐색하는 모양입니다. 아내와 발걸음을 맞추며 나를 앞섰습니다. 내가 지나치려던 큰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나도 뒤따랐습니다.


“시원하네, 잠깐만 기다려요.”


냉방이 잘돼서 말 그대로 시원합니다. 잠시 후 목덜미를 타고 흐르던 땀이 숨을 죽이는 듯합니다. 주변을 살피다 보니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과의 거리는 제법 멀어진 셈입니다. 지금이 언젠가. 말복이 내일이고 보니 더울 수밖에 없습니다. 덥고, 배고프다는 생각에 짜증스럽던 마음이 서늘한 공기에 누그러들기는 했어도 허기가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삼 층 식당가로 갔습니다. 혼잡스럽습니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 입구에 섰습니다.


“이삼십 분은 기다려야 한답니다.”


나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간을 죽여야 합니다. 잠시 아래층 생활필수품 매장을 돌다 아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앉자 말없이 각자의 음식에 눈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맛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 예정 시간보다 두어 시간을 지체했으니,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떠오릅니다. 맛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들이 입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맛이 괜찮지요.”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은 몇 년 전부터 맛집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년부터는 부쩍 횟수가 늘었습니다. 몇몇 방송국에서 ‘맛집 기행’이라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을 신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느끼는 맛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각자 음식의 선호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담백한 것을, 또 어떤 사람은 느끼한 것을 좋아합니다. 매운 것을, 단 것을, 짠 것을, 덤덤한 것을…….


나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기름지거나 양념이 많이 들어간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짜고 매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처음의 음식 그대로 먹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회를 먹을 경우 초장이나 그 밖의 것을 찍어 먹거나 첨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자연 그대로의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가끔 말을 합니다.


“무슨 맛으로 먹어요?”


“입맛으로 먹지 뭐.”


작년에는 며칠간 강원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산천을 구경하는 김에 친구들의 말에 따라 맛집도 몇 군데 들렸습니다. 영월의 다슬기 해장국, 황태구이, 올챙이국수……. 다슬기 해장국을 빼고는 내 맛이 아닙니다. 내 입맛이 이상한가 하는 생각에 그 후에도 몇 군데를 들렸지만, 황태구이는 너무나 달고 올챙이국수는 무미건조했습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간 게 아닌 것처럼 국수에 올챙이가 들어간 건 아닙니다. 옥수수로 만든 묵 같은 걸 국수처럼 뽑아내는데, 찰기가 부족해서 뚝뚝 끊기다 보니 올챙이를 연상케 되어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먹을 게 궁핍하던 시절의 여러 가지 토종음식 중 하나입니다. 맛집에 소개된 영월 시장을 찾았습니다.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이 줄지어 있건만 맛집을 머릿속에 입력해 둔 친구는 골목을 따라 요리조리 몸을 움직였습니다. 맛집은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루한 생각에 그만 가자고 했지만 소문난 맛집에 가야 한답니다. 기대를 걸고 좌판에 자리했는데 나온 것은 옆집이나 앞집이나 뒷집에서 보는 음식과 별다를 게 없습니다.


‘맛’


그렇지 뭐, 어려서 내가 싫어했던 감자떡과 별다름이 없었습니다. 먹고 나서 모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 후 내가 맛을 잘 모르나 하는 생각에 그 시장 다른 좌판에서 올챙이국수를 먹어보았습니다.


‘그 맛이 그 맛이지 뭐.’


나는 남들이 말하는 맛집을 별로 신용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 맛을 감별하는 사람, 이 밖에도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음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맛을 따지기보다는 먼저 건강에 마음을 둡니다. 더구나 요즈음 몸의 상태가 어긋나면서부터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소문난 맛집을 신용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미식가가 맛집을 소개한다고는 해도 당사자인 나의 기준은 아니고 그 사람의 잣대일 뿐입니다. 나는 소리 소문을 내지는 않지만, 별난 맛집 한 곳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집, 곧 우리 집입니다.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새콤한 열무김치를 꺼냈습니다. 침이 저절로 입 안에 고입니다. 찬물에 막 헹구어 낸 면발이 탱글탱글합니다. 오늘 점심은 열무국수입니다.


“한 국자 더 드시려오.”


나는 아내의 손을 향해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맛집 식탁에는 선풍기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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