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기 사과의 향기 20220821
창 유리에 가을이 붙었습니다. 가을은 열매입니다. 그 잎사귀는 밤사이에 노란 은행잎이 부러워할 만큼 은은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반투명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눈을 대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벌레 먹은 잎 구멍으로 어른거리는 밖의 모습이 연노랑으로 흔들립니다. 어릴 때 개다리소반을 덮은 모시 조각보가 물김치의 물에 얼룩진 느낌입니다. 열매는 피부에 세로로 서너 개의 붉은 줄을 그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는데…….’
그것도 후줄근하게 말입니다. 유리창에는 아직도 떠나지 않은 빗방울들이 풀잎에 맺힌 새벽의 이슬처럼 제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여름입니다. 말복이 지난 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식지 않은 더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인지는 몰라도 예전의 날씨와는 다른 듯합니다. 내 유년 시절에는 말복이 지나면 곧 새벽녘에는 선선하다는 느낌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말복이 가까워졌다거나 지났다고 쉽게 기억되는 이유는 광복절 전후이기 때문입니다. 한 주만 지나면 개학입니다. 여름내 잠자리에 들 때면 드러내던 배꼽은 얇은 가리개로 가려졌습니다. 유난히 배앓이가 심했던 나는 동생의 포대기나 얇은 이불을 끌어안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며칠 전 수변공원을 걷다가 탐스러운 열매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추석 전날 송편이 익기를 기다리며 부엌을 떠나지 못했던 것처럼 한참이나 나무 주위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아래위를 살펴보며 가지를 만져보고 잎을 만져보고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통통해진 열매를 건드려 보았습니다. 따끈따끈한 햇살을 마주하고 싱싱한 잎의 보호를 받는 열매는 어느새 희고 노란 분칠을 하는 중입니다. 성급했을까. 몇몇 열매는 서툰 아가씨의 입술 선을 흉내라도 내려는 듯 분홍 줄무늬를 그었습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발끝 주위에 열매들이 널려있습니다. 며칠 동안 태풍이 심술을 떨었을 때문일까요. 떨어진 열매들은 나를 보아 달라는 듯 좀 더 짙은 홍조를 띠고 있습니다. 곱다는 생각에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요리조리 살피다가 코로 가져갔습니다. 사과 냄새가 날 것만 같습니다. 살며시 내려놓고 색이 짙은 것을 잡았습니다.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아무런 냄새도 없습니다. 서둘러 앞선 계절을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시 풀 위에 얹혀있는 보다 고운 열매에 손이 갔습니다. 코끝에 대고 연신 냄새를 찾기 위해 큰 숨을 쉬었습니다.
‘뭐야, 사과가 맞기는 맞는 거야? 아기 사과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향기를 찾아야겠습니다. 손으로 열매의 겉면을 조물조물 매만졌습니다. 내 생각에는 매만진다라기보다는 잘 닦았다는 말이 맞습니다.
‘왜.’
입으로 가져가야 하니까. 코가 느끼지 못하니 입으로 냄새를 찾아야 합니다. 아끼는 과자를 베어 물듯 조심스레 입안으로 가져갔습니다. 베어 물었다기보다는 앞니로 깔쭉거렸다는 말이 맞는다고 해야겠습니다. 텁텁한 느낌이 입 안에 돕니다. 비록 아기 사과일망정 냄새도 맛도 없다니, 콱 깨물었습니다. 어기적어기적 씹었습니다. 옅은 풋사과의 맛이 납니다. 냄새가 코끝에 전해집니다. 내 허리가 굽혀졌습니다. 풀 위에 발가벗고 이리저리 흩어진 열매들을 훑어봅니다. 숙성이 잘됨 직한 것들을 몇 개 집어 올렸습니다. 겉면이 매끄러운 것이 있는가 하면 벌레 먹은 듯 흠집이 있고 검은빛을 띤 것도 있습니다. 두 개를 남기고 나머지 것은 어미나무에서 먼 곳을 향해 팔매질했습니다. 그들은 ‘후드득’ 소리를 남기고 몸을 감추었습니다.
반대쪽 손에 남은 것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멸치도 생선인데 하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찝찔하고 고소한 맛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입안에 사과 향이 감돕니다. 어렴풋이 다가온 맛입니다. 두어 시간이나 쉬지 않고 빠른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건조했던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콩알만 한 것 두 개가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
풀숲을 떠나지 않은 이슬 같은 빗물에 싸인 아기 사과를 주워 올렸습니다.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없습니다.
‘궁상맞게 뭐 하는 거람.’
남이 나를 보는 것처럼 홀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확인해야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기 사과를 발견하기 전 또 다른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아직도 버찌가 있는 게야?’
나무에 다가갔지만, 벚나무는 아닙니다. 잎이 다르고 나무 둥치의 생김새며 가지도 다릅니다. 하지만 열매는 버찌를 꼭 빼닮았습니다. 가지를 휘어잡고 검은 알갱이 한 개를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잘 익었다는 생각과는 달리 입 안이 씁니다. 짙은 검은색이지만 완전히 익지 않은 때문일까. 다시 한 알을 따서 음미했지만 역시 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닥에는 검은 열매가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깨끗해 보이는 알갱이를 주워 입에 넣었습니다. 쓴맛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단맛이 돕니다. 나는 어미나무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너는 익을 대로 익었으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된다고 놓아준 모양입니다. 맛은 맛으로 끝내야 합니다. 녹두 알만큼이나 작은 열매를 얼마나 입에 넣어야 간에 기별이 갈까. 주워 먹기에는 흙바닥이 마음에 들지 않고 가지를 휘어잡기에는 쓴맛이 가시지 않습니다. 서너 알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아내에게 열매 자랑을 했습니다. 자랑만 한 게 아니고 도시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것들을 음미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앵두, 버찌, 보리수, 살구, 매실 등, 산책하다 보면 가끔 내 눈에 들어옵니다. 참새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한두 알씩 입에 넣어보곤 합니다.
나는 돌아서면서 아기 사과 네 알이 달린 끝 가지를 하나 솎아냈습니다. 새로운 것에 신기해하는 아내의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집 주변에도 이런 것이 있어요.”
“도시 속에 시골이지 뭐.”
아내는 내가 손에 쥐어 준 것을 들고 잠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잠시 후 주방에서 노란 끈을 하나 꺼냈습니다. 여름이 더위를 묶어놓듯 나는 아기 사과를 창가의 유리 벽에 매달았습니다. 옥수수를 다는 것처럼 매어놓았습니다. 그게 며칠 전입니다.
오늘도 여름이 더위를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아기 사과는 가을이 기다려지는 모양입니다. 밤사이 서둘러 잎과 열매에 고운 물을 들이고 나를 반깁니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넘을 것만 같습니다.
소나기가 물러났습니다.
‘반짝’
햇빛이 어느새 아기사과와 눈 맞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