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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62. 우리 집에 없는 것 20220904

by 지금은

우리 집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큰 불편함이 있지는 않습니다. 주거에 필요한 대부분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만 남의 집에 있는 것들이 없음을 알아채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때가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흘려버리고 맙니다. 이런 것들은 특별한 행사 이외에는 불편함이 없이 지냅니다.


집값이 한창 오를 무렵입니다.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에 공인중개사무실에 집을 내놓았습니다. 원인은 달 때문입니다. 매매를 거두어들이기 전까지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한 가지 이상의 트집이 있습니다.


“깨끗해서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하고 싶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북동향이라 망설여진다고 했습니다. 향이 맞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반박하기보다는 그의 떠난 마음을 잡아볼 요량으로 집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 집은 연중 하루 이틀 빼고는 에어컨이 필요 없어요.”


여름에 햇볕이 들지 않습니다. 높은 층이라 어둡지도 않고 창을 열면 지나는 바람이 심심한 듯 실내에 들어와 놉니다. 남쪽과 비교하면 한창 더울 때는 사오 도의 기온 차이가 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집들은 더위가 오기 전부터 에어컨 사용을 하게 해달라고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수시로 건의합니다. 우리 집은 단지 안에서 첫 번째로 작은 평수입니다. 작다고는 해도 우리나라 아파트의 기본 평수를 상회합니다. 규모가 큰 아파트이고 보니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생각 끝에 이사해야 할 마땅한 거처를 미리 알아보지 않았으니 이 집에 계속 눌러 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사를 포기했는데 문의가 폭주했습니다. 공인중개사사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가 왔습니다. 그동안 집을 구경한 사람 중,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내가 제시한 금액보다 더 높여주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보금자리를 옮길 마음이 떠나고 보니 거절하면서도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니야.’


낮은 층에 살아보고 싶었지만, 지상을 오르내리는데 삼십오 초의 시간을 더 들인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말을 거들었습니다. 지하철역이 가깝지, 내후년이면 우리 아파트에서 역까지 지하 통로가 연결되어 날씨에 구애됨이 없이 다닐 수 있다며 좋아했습니다. 하기야 이런 이유로 아내는 내가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미리부터 반대 의사를 비쳤습니다.


내가 노란 색지를 꺼내 모양을 내고 있을 때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뭐 하고 있어요. 또 종이 접어요?”


“뭐 같아요?”


“달.”


그렇습니다. 나는 달을 오리고 있습니다. 보름달입니다. 반달을 오리고, 나머지 조각으로 초승달, 상현달도 오렸습니다. 야속하게도 우리 집에는 달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추석날에는 보름달을 보아야겠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정월 대보름과 추석날에는 달을 보아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아차 하는 사이에 그만 지나치는 경우가 여러 번입니다.


나는 달을 동경합니다. 유년기 달밤의 추억들이 이맘때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짝사랑하던 애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던 기도, 가로등보다 더 밝은 빛 속에 밤이 이슥할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놀던 강강술래, 수건돌리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달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던 때를 생각했습니다.


또 달로 인해 섬에서의 생활이 전혀 외롭지 않았던 시절은 큰 창문이 외부와 방안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궂은날이 아니면 일 년 내내 달을 마주하고 살았습니다. 초승달에 살이 붙으면 보름달이 되고 몸이 불었다 싶으면 살을 빼는 동안 그믐달이 되기까지 달은 빠짐없이 내 창문을 통해 나와 눈을 마주칩니다. 처마도 없는 양옥집 창문은 누우나 앉으나 서나 내 눈을 발가벗겨 놓았습니다. 별들이 소근 거리는 가운데 바람이 지나가고 옅은 구름이 지나가고 새들이 와서 놀다 가고 그림자가 따라갑니다.


내가 홀로 기거하는 몇 해 동안은 말 그대로 동화적 삶이었습니다. 외딴집 달빛 아래 책을 읽고, 노래도 하고, 낚시질하기도 하고, 잠을 낮으로 미뤄둔 채 밤을 새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달밤은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좋았습니다. 꽃피는 달밤, 목덜미의 더위를 끌어안은 달밤, 벌레 우는 달밤, 눈 내리는 달밤, 뭐 소중하지 않은 밤은 없었습니다.


달밤이라고 해서 좋은 추억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달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아픈 마음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 앞으로 잘될 거야. 틀림없이 잘될 거야.’


늘 달과 눈을 마주치던 것과는 달리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달이 나를 찾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 내가 달마중해야 합니다.


‘잊으면 어쩌지.’


유리 벽에 달하나 붙여놓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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