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산책 20220928
“나물 뜯으러 안 가요?”
읽던 책을 덮으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방 안에서 대답이 없습니다. 혼자 산책을 하려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챙겼습니다. 휴대전화도 챙겼습니다.
“같이 가요.”
아내는 검정 비닐봉지와 가위를 챙겼습니다.
“내 가위도 챙겼지요?”
“어디에다 두었는데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갈 뻔했다며 내 필통에서 가위를 꺼내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요즈음은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늦가을처럼 서늘하지도 않습니다. 보통 걸음으로 걸으면 땀이 날 정도입니다.
오늘은 대학교 뒤편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내가 좋아하는 오솔길입니다.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쑥도 있습니다. 여름철 벌초로 인해 다시 움튼 부드러운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대여섯 주먹 뜯어온 일이 있습니다.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약용으로도 쓰여요.”
이름을 말해주며 변비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대하는 나물이고 보니 어떻게 해야 음식 구실을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해 먹어야 할까.”
“겉절이처럼 무쳐 먹으면 되겠지.”
깨끗이 씻은 다음 체에 밭쳐 놓고 휴대전화를 켰습니다. 아내는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곧잘 이용합니다. 휴대전화에는 훌륭한 요리사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물이 식탁에 올랐을 때 우리는 거부감 없이 잘 먹었습니다. 쓴맛이지만 양념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웠습니다. 몇 끼를 다른 반찬과 잘 어울려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장소에 다다랐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나무들 사이의 앞에서 말한 식물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저것들이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풀 중에 고들빼기와 좀 씀바귀만을 알려주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잘 모르는 아내에게 이것저것 말했다가는 혼동을 일으킬 게 분명합니다. 나는 그동안 공원이나 길을 걸을 때면 종종 아내에게 식물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해 줍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은 알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있습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속의 내용이나 강의 시간에 강사의 말 중에 내가 필요한 것만을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봄이면 가끔 나물을 뜯습니다. 아내는 생각과는 달리 나물을 채취하는 것에 좋은 반응을 보입니다. 봄맛을 볼 수 있고 더구나 크게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이니 얼마나 좋으냐고 합니다. 처음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말했을 때와는 달리 경험을 한 후로는 내가 같은 말을 할 때마다 선 듯 따라나섭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나물을 뜯을 곳이 없느냐는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나물 뜯기를 말하면 봄을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들은 말입니다. 봄에 나오는 풀은 독풀을 제외하고 모두 먹을 수 있으니 웬만한 것은 다 입에 들어가도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봄에는 나물을 뜯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뜨이는데 여름이나 가을철에는 이 광경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퇴직을 한 후부터는 가끔 계절과 관계없이 나물을 뜯어오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지저분하게 이런 것을 가지고 오느냐며 외면했습니다. 내가 섬의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종종 나물을 뜯곤 했습니다. 달래, 냉이, 고사리, 미나리 등입니다. 하지만 그 나물들을 아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한 번 물어봤는데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만 뜯어요.”
어느새 비닐봉지에 가득 찼습니다. 나물을 뜯는 동안 사람들이 곁을 지나쳤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도토리를 비롯한 열매를 줍거나 따지 마십시오. 동물의 겨울철 먹이가 됩니다.”
참나무 주변으로 현수막이 곳곳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벌써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어떤 사람은 줍기에 앞서 나무를 흔들거나 발로 차기도 합니다.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라도 하면 슬그머니 외면하거나 자세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나물을 채취하는 것이 나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줄기와 잎은 서서히 자취를 감춥니다. 뿌리는 온전히 흙 속에 숨어 내년 봄을 기다립니다.
나는 교정을 가로질러 학생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속이 빈듯합니다. 학생들이 수업하니 구내식당이 열려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상이 맞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닫혀있던 식당에는 학생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식사합니다. 때가 되었으니, 우리도 점심을 먹어야겠습니다. 한 학생의 도움을 받아 기계에서 식권을 샀습니다. 오랜만에 우엉 반찬이 곁들인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인기가 있어서인지 메뉴를 고르는데 동이 났습니다. 분식은 싫고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집 앞에 이르자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디 다녀오세요.”
비닐봉지를 열어 보였습니다. 아직도 봄이냐며 미소를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