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야경 20201018
어제저녁 뉴스를 보다가 오늘 새벽 기온이 떨어진다기에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점차 기온이 내려간다는 데 내 마음은 오히려 푸근한 느낌입니다.
‘뭐야?’
사각형 연못을 둘러싼 조명등이 오색으로 빛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위를 우윳빛으로 밝혔습니다. 잠시 내가 어제 잘못 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곧 휴대전화의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내 생각이 맞습니다. 연못 주변이 우윳빛으로 보입니다. 하루 사이에 조명등이 바뀌었습니다. 연못 주변이 한층 멋져 보입니다.
“이리 와 봐.”
일찍 퇴근한 아들을 다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불렀습니다. 평소보다 내 큰 소리에 제 방에서 성큼 거실로 나왔습니다. 나는 밖을 바라보던 그 자세로 창 아래로 검지를 폈습니다.
“뭔데요.”
“오색 불빛 말이야.”
“아버지, 원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불빛이 바뀌었다고.”
아들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입니다. 나는 휴대전화에서 어제 찍은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옆에 서 있던 아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센트럴 파크가 훨씬 더 좋다는 말을 남기고 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맞습니다. 길 건너 센트럴파크의 조명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하지만 송도의 어느 아파트 광장에 이런 조명이 있다는 말을 아직은 듣지를 못했습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휙’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내 휴대전화에서 나는 알림 신호입니다. 아파트 동호회에서 운영하는 모빌입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불빛이 바뀌었네요.”
누군가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 듯합니다. 좋은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간다면서 왜 주민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빛을 바꾸었느냐고 합니다. 핵심은 돈과 관련입니다. 빛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체 비용이 드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관계자에게 따져 묻습니다.
잠시 후 문자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사람이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나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은하게 연못에 드리우는 오색불빛이 조용한 밤을 수놓습니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사람이 잠시 돌 벤치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잠시 후 연못의 징검다리를 건넌 두 남녀가 바로 내 발아래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깨가 닿고 머리가 기울어집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부부일까, 애인일까.’
남이야 어찌 됐든 불이 났을 때 불구경, 홍수가 졌을 때 물 구경도 재미있다고 하지만 젊은 청춘 남녀들의 연애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순간도 짜릿합니다. 순간 내 마음이 과거로 돌아가 싱싱해진 느낌입니다. 흐린 불빛에 안긴 그들이 지금은 애인들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더 낭만적일 수 있습니다.
내일 밤에는 아무래도 아내와 함께 두 연인이 자리했던 곳에 앉아볼까 합니다. 돌의자들이 연못가의 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지만 부러움이나 시기심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남이 알면 뭐라고 할지는 몰라도 마음은 청춘이 되고 싶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아파트의 나무들은 고운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년에 비해 낮아진 기온 때문인 듯합니다. 갑자기 날씨가 시월의 날씨답지 않게 쌀쌀해지자 수목들 가운데 벚나무가, 느티나무가 먼저 기운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한낮에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맷방석 위에 자리를 잡은 듯 보입니다. 아니 우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마음껏 정수리를 드러냈습니다.
잊지 않는다면 사진도 찍어야 합니다. 나는 요즘 며칠간 해가 뜨는 시간이면 아파트 광장을 어슬렁거립니다. 보름 전입니다. 복지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기에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의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지도자인 듯 강사인 듯 보이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일출 전후 한 시간, 일몰 전후 한 시간입니다.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참고가 되는 사항을 귀동냥했습니다.
나는 세 군데를 기점 삼아 일주일 동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같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색감의 변화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다름을 발견했습니다. 풍경만으로는 단조롭다는 생각에 산책하는 사람을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느낌입니다. 나는 사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안다고 하면 풍경과 인물을 삼분하여 구도를 잡으라는 정도입니다.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조언을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연못가에서 아내와 데이트해야 합니다. 아내는 찬 것이라면 질색입니다.
‘휴대용 방석, 군것질할 것 준비.’
날짜에 굵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사진이라는 글자도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