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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어느 날

88. 정말 반려견을 키웁니까. 20221024

by 지금은

어느새 새벽에는 찬기가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먼동이 트자,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몰랐던 싸늘함이 목덜미와 손에 느껴집니다. 방역 마스크를 벗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광장의 길로 들어서려 하자 어느새 개들이 먼저 앞서있습니다. 주인이 뒤를 따릅니다. 개가 찔끔찔끔 나무와 의자의 기둥에 영역 표시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여러 마리의 개들이 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엉덩이에 힘을 주는 개들도 있습니다.


‘저것들은 분명 개새끼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개새끼’ 말고 뭐 또 다른 말이 있을까? 쉽사리 찾아냈습니다. ‘견공’입니다. 또 있습니다. 반려견입니다. 개새끼라는 말을 빼고는 고상한 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가위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예전에는 대로변 안쪽의 골목을 들어서면 담벼락 그려진 가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구가 좀 민망합니다. 아니 섬뜩합니다.


‘노상 방뇨! 걸리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면 이런 그림과 문구가 있었겠습니까. 지금이야 담벼락에 가위가 그려진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예전 대폿집이 있는 주위의 골목에서 종종 발견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시대에는 술집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때만 해도 철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노상 방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부모가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쉬’를 시킨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합니다. 언제인가 전철에서 칭얼대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로 인해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좋게 봐줬지만, 대다수는 비난의 쪽지를 남겼습니다. 가슴을 보였다는 이유입니다. 나는 모정이란 이유로 아기 엄마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아직도 똥 고개가 있을까? 지금은 똥 고개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이십 대의 젊은 시절만 해도 종종 이 말이 입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한 권 읽었는데 똥 고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마디로 똥 고개하면 그 주변 가난한 동네로 인식됩니다. 중학교 때입니다. 염리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위해 고개를 넘는데 길을 따라 똥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판잣집이 게딱지처럼 모여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똥 고개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한동안 똥 고개라는 이름이 이곳에만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나중에 근무지가 바뀌어 인천으로 출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도 똥 고개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다 똥을 밟는 일도 있었습니다.


‘똥 고개!’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절 도회지에는 여기저기 똥 고개라는 이름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닷가에 ‘동막’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 시절 어른들이야 바깥에서 생리를 해결하기 위해는 눈치를 보며 요령껏 일을 치렀겠지만, 아이들은 별 거리낌 없이 실례를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급하다 해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생리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바지를 내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삶이 나아지고 사회질서가 잡혔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 주인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개새끼를 키우는 사람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지금 개 목줄을 잡은 사람은 개새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가 노상 방뇨하도록 내버려 두는 부모가 있습니까. 기저귀를 채우거나 아니면 화장실로 데리고 갑니다. 가끔 새벽 산책을 하는 나는 여기저기 찔끔거린 얼룩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벤치에라도 앉아보려면 신경이 쓰입니다. 슬그머니 배변시키고 덩어리의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려 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배변은 집에서 해결시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 좋은 화장실을 놔두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밖이 뭡니까. 개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애견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눈총을 받지는 않게 해야겠습니다. 자기 자식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거나 손가락질을 받으며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에 방뇨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파트 출입문을 곧 벗어나자, 기둥에 실례를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빌에 주민들의 항의 글이 올라옵니다. 학습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청소를 하시는 분이 물그릇과 큰 솔을 들고 기둥으로 다가갑니다. 물을 뿌리고 얼룩을 문지르고 있습니다. 눈높이에는 주의 문구도 있습니다.


반려견이라고 고상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개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기저귀를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식이라 생각하고 노상 방뇨를 시키는 일은 삼가야겠습니다. 나는 개의 습성을 완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고상하게 산책과 운동에만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자라나는 세대들은 ‘동막’처럼 ‘똥 고개’에 대해 모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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