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목욕탕 20210309
코로나가 무섭기는 무서운가 봅니다. 얼굴이 없고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귀신보다 더 겁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목욕탕은 한산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샤워했는데 며칠 지나다 보니 개운한 맛이 없습니다. 겨울철과 이른 봄은 아무래도 욕실의 낮은 온도가 마음에 걸립니다. 옷을 벗으면 한동안 차가운 기운이 감돕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보름에 한 번쯤은 대중목욕탕을 이용합니다.
전번에도 그랬는데 오늘도 목욕탕은 넉넉합니다. 넉넉함 자체를 떠나 독탕에 왔다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을 잘 맞추어 왔을까요. 그 넓은 공간에 나 혼자입니다. 탕 안에서 느긋하게 눈을 감고 따스함을 즐기다 눈을 떠보니 그제야 한 사람이 보입니다. 잠시 후에 한 사람이 더 들어왔습니다. 내가 목욕을 끝내고 나가려는 순간 두 사람이 더 들어왔습니다.
정말 코로나 전염병이 두려운 존재인가 봅니다. 사우나 시설은 폐쇄된 지 오래입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에 의한 전염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목욕탕 공간에서도 거리 두기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되도록 서로의 간격을 넓히려고 신경을 씁니다. 샤워 시설도 사이사이를 비우고 사용하고, 탕 안에도 눈치를 보아가며 교대로 들어갑니다.
독탕이 아닌 독탕에서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기다가 떠올린 것은 지난날의 목욕 풍습이었습니다. 역사의 연보를 펼치듯 어린 시절부터 정경이 나타납니다. 내가 꼬마였던 시기입니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기이고 보니 시골에는 변변한 목욕시설이 없었습니다. 나는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목욕을 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목욕한 때를 떠올리면 설날이 다가올 무렵입니다. 목욕은 며칠 동안 이어졌습니다. 어머니가 가마솥에 끓인 물을 큰 함지박에 붓고 찬물과 섞었습니다. 낯에는 형과 나를 비롯한 동생들이 어머니의 손에 끌려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습니다. 밤에는 주로 어른들의 목욕 시간입니다. 차끈한 기운 때문에 목욕을 싫어하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옷을 벗기며 말씀하셨습니다.
“어휴, 까마귀가 보면 친구 하자고 하겠다.”
할머니가 엄마의 말씀을 거드십니다.
“목욕하기 싫다면 때때옷이랑은 이웃집 친구 영철이한테 주어야겠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얌전한 양이되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할 때입니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이랍니다. 학교 운동장 한편에 목욕탕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학구 내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사업이라는군요. 남녀의 칸이 분리된 공간에 내 키만큼이나 크고 넓은 무쇠솥 두 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월요일은 상사골 사람들, 화요일은 사기막골, 수요일은 개천골…….
목욕하고 싶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작을 한 다발 머리에 이고 지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나는 이곳을 이용해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어른들이 사용했는데 큰 호응을 얻지 못해서인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장작을 이고 지는 불편함 보다는 장날에 장을 볼 겸해서 온양온천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목욕다운 목욕을 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욕실이 없다 보니 여름에는 미역을 감을 겸 가까운 강으로 갔지만 겨울에는 목욕탕을 이용했습니다. 늘 만원이었습니다. 특히 명절이 가까워지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욕탕의 간이 의자가 부족하곤 했습니다.
“당신, 그만 씻고 나와요.”
사람들로 붐비다 보니 목욕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주인은 눈이 어떻게 예리한지 시간을 초과하는 사람들을 잘도 지목해 내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목욕탕은 말 그대로 때를 씻어내는 곳입니다. 지금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못 됐습니다. 휴식이라도 취하고 즐기고 싶다면 온천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이름을 떠올려 봅니다. 임금님이 피부병을 다스리기 위해 찾았다는 온양온천을 비롯하여 수안보온천, 광천 온천, 동래온천…….
어느 사이에 목욕탕이나 온천은 다른 이름으로 변모했습니다. 기능을 추구하며 다양성을 추가하였습니다. 오늘 내가 간 곳은 집에서 가까운 목욕탕입니다. 이름이 거창합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블루오션’입니다. 탕이 네 개나 됩니다. 쑥탕, 냉탕……. 건습 사우나, 습식 사우나, ㅇㅇ불가마, ㅁㅁ불가마……. 가마골, 헬스장, 미용실…….
“어쩌지요.”
옷을 벗고 목욕을 할 수 있는 탕이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폐쇄되어 있습니다. 빈자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 접수해 버렸습니다.
목욕을 끝내고 출입문 앞에서 신발을 신을 때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종업원의 힘없는 목소리가 겨우겨우 내 귀에 전달됩니다. 마스크 때문일까요. 내가 전하는 인사말도 내 귀에 환청처럼 울립니다. 날이 점점 따스해지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그만 마스크를 벗어야겠지요.
‘따끔’ 언제이더라? 예방주사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