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들이 20210306
창가의 커튼을 밀어냅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오늘 서울 구경을 갈까 하고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은근히 언질을 주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망설여집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그렇고 하늘도 내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겨우내 외출다운 외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깥출입이라고는 약해지는 체력을 유지하려는 마음에 동네를 쳇바퀴 돌듯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것이 전부입니다. ‘아참’ 하나를 더 덧붙여야겠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책에 매달리다 보니 일주일에 몇 차례 도서관을 들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책의 대출과 반납이 전부입니다. 코로나 전염병의 확산은 도서관에 머무는 것마저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아내의 표정을 살핍니다. 내 말을 잊은 듯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은 시간의 여유가 있는지 한동안 글씨를 쓸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뭔가 마음에 잡히는 게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뉴스를 보는 동안에도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움츠러든 상황에 국내의 사정은 암울한 이야기뿐입니다. 언젠가부터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네 편 내 편으로 갈려 서로를 비난합니다. 마치 사냥개처럼 으르렁거리며 상대편 물어뜯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다수의 횡포는 도는 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되는 뉴스를 듣다가는 혈압이 오르고 나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아 스위치를 껐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불현듯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여보, 우리 소래 어시장이나 한 번 가볼까요.”
대답은 없지만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어시장이 불난 지 몇 년 되었으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소래역을 벗어나자 많은 사람이 보입니다. 토요일이기는 해도 많은 인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처럼 갇혀 있다가 답답함에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길에도 앞에 보이는 상가에도 안면을 가린 마스크들이 북적입니다.
노점을 지나치려다 호떡을 종이컵에 하나씩 담아 들었습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노점 뒤편 한적한 벤치에 앉았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가슴팍을 지나 코끝을 간질입니다. 컵 속에 반으로 접힌 호떡은 아직 내 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호’ 불어봅니다. 뜨거운 김이 입 주위를 감쌉니다. 조심스레 호떡의 가장자리를 조금 떼어 물었습니다. 예전의 맛은 아니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먹어요.’
아내의 눈치를 슬그머니 봅니다. 내 식습관을 늘 염려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감추고 싶습니다. 씨앗을 넣은 호떡은 색깔도 다르려니와 같은 듯 다른 맛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행인들 사이를 비집고 시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눈이 나와 마주칩니다. 수많은 사람의 눈도 있지만 생선들의 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배를 깔고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외눈박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선은 몸은 하나 눈은 둘이니 눈 구경을 실컷 하게 생겼습니다. 생선들의 생김새가 서로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옷차림도 구구 각색입니다. 봄과 겨울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활개 치는 작년 올해는 마스크의 색이며 모양까지도 다릅니다.
살 것을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시장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꼭 무엇인가를 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구경, 물건 구경이 나를 시장에 머물게 합니다. 한 곳에 이르자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생선구이 음식점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냄새뿐만 아니라 생선을 그을린 연기가 안개처럼 주위에 번집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생선입니다. 아내는 육지의 고기보다 해물을 더 좋아합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생선구이…….”
“집에서 계란을 먹고 좀 전에 호떡도 먹었는데…….”
아직은 위가 그들먹하다는 눈치입니다.
“그럼 한 바퀴 돌고 옵시다.”
옛날의 소래 철길로 들어섰습니다. 두 레일 사이가 유난히 좁습니다. 협궤입니다. 오십 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 열차를 탔던 경험이 있습니다. 열차 안이 좁아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이 닿을 것 같았다는 것과 느린 속도입니다. 열차가 없어진 후에도 그 철길은 남아있어 전에도 몇 차례 밟아보았습니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지만 발바닥은 늘 새로운 느낌입니다. 신발이 달라졌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고 보행에 편리하도록 철길을 변형시켰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시 회상에 젖었을 때 아내가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유난히 작고 어린 갈매기들이 눈에 뜨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라 그럴까요. 꼭 닭의 병아리나 오리 병아리를 보는 느낌입니다. 귀엽습니다.
“참 몸이 깨끗하고 귀엽지요?”
아내의 말에 수긍하며 한동안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꼬마 아이와 그 부모들이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유혹합니다. 먹이를 위로 쳐들 때마다 갈매기들의 주위를 선회합니다. 낚아채지 못하고 주위를 날지만 몇 마리가 용감하게도 먹이를 부리에 담습니다. 월미도와 무의도를 왕래하던 여객선의 여행객과 갈매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을 함부로 주면 안 되는데, 그들 스스로 생존 능력을 빼앗는 일입니다.’
“선물입니다.”
생선구이 집을 들어섰을 때 인사입니다. 주인이 포장된 마스크를 건네줍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스크를 했음에도 받았습니다. 잠시 후 다른 손님에게도 같은 말을 하며 마스크를 건넵니다. 코로나가 빚어낸 이 집만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선구이 백반 주세요.”
구이의 맛 속에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의 먹자골목집의 모습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나는 그때의 맛이 좋게 느껴졌는데 아내의 입맛은 다른가 봅니다.
“싱싱해서 좋아요.”
심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에는 간이 입에 맞아 느낌이 좋았는데 오늘은 내 입맛에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말했더니 미역국 옆에 간장 종지를 보지 못했느냐고 말합니다. 보았지만 모른 척 지나쳤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차려진 그대로 먹는 식습관이 있습니다. 고유의 맛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은 별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나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양념으로 포장하면 뭐 그 맛을 알까.”
역으로 가는 동안 소래역사 전시관을 지나쳤습니다. 내가 처음 기관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증기기관차가 마당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덩치가 작다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수인선 철길을 달렸으니 그럴만합니다. 내가 타던 기관차의 크기에 반절 정도가 될까 말까입니다.
역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앞에 호떡집이 내 눈을 막아섭니다. 아까 그 노점상입니다.
“뭐 더 먹고 싶어요.”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또 먹으면 맛이 없어요.”
아이처럼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향합니다. 슬그머니 한 번 더 뒤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