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Nov 15. 2024

2021 그날

4. 도서관 20210310

스마트폰에서 ‘동동동’하는 울림이 귓전을 스칩니다. 막 잠이 들려던 참이었습니다.


‘웬 문자.’


이 늦은 시간에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중요한 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을 소리가 내 귓전에까지 다가왔다니 참으로 조용한 밤입니다. 거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휴대전화기를 열고 버튼을 누릅니다.


‘대출 도서 반납 안내.’


대출 만료 기일이 다가왔으니, 내일까지 책을 반납하라는 문자입니다. 하필이면 이 늦은 시간에 보낼 게 뭐람, 짜증스러운 감정이 일었다가 이내 사라졌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알려주었으니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그보다도 내일 반납하기 위해서는 아직 읽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감한 아내의 잠자리가 염려됩니다. 열린 침실 문을 살며시 닫고 거실의 불을 밝혔습니다. 지금부터 서너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을 한 컵 그득 마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몸을 뒤척이자,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말합니다.


“다섯 시인데 더 자요.”


몸이 뜨거워지는 게 더 자고 싶은 생각이 달아났습니다. 아직도 갱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다시 찾아옵니다. 이럴 때는 아무래도 바깥바람을 쏘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걸쳤습니다.


“캄캄한 밤에 운동가게요.”


“운동 겸 책도 읽은 책을 반납해야겠어요.”


“도서관 직원도 없을 텐데…….”


“무인 함에 넣으면 돼요.”


“아참, 그렇지.”


공원에 들어서자, 호수 속에는 보안등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을 옹기종기 모인 불빛들이 호수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나온 줄 알았는데 한 발 앞선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다. 열심히 팔을 내두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새벽 운동을 나온 게 틀림없습니다. 발걸음이 참 가볍습니다. 도서관에 이르는 동안 몇 사람이 나를 그들의 등 뒤로 멀찌감치 밀어냈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앞서간 그들이 언덕 주위로 몸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털커덩’하고 책이 떨어집니다. ‘드르륵’ 반납 영수증이 바람에 날리듯 내 앞으로 밀려 나옵니다. 끝, 무인 함은 침묵에 잠깁니다.


이왕 온 김에 책을 빌려 가면 좋겠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도서관은 그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부스럭거림에도 미동을 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언덕의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 때까지는 오로지 책만을 끌어안고 사색에 잠길 것입니다.


주위를 분간할 수 있으니, 공원을 좀 더 돌아야겠습니다. 발을 옮기는 동안 여러 명이 나를 앞질러 걸어갑니다.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발걸음이 힘차 보입니다. 내가 발자국을 부지런히 떼어놓아도 그들은 더 멀리 달아납니다.


‘어느새 내 발걸음이 무뎌진 거야.’


새삼 오늘만 느낀 것은 아니고 작년부터 속도가 유난히 느려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느림이 내 나이를 빠르게 끌고 가는 게 아닌지 모릅니다. 발걸음뿐만이 아니라 생각이나 행동도 자꾸만 엉기적거립니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앞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도서관 앞에 이르렀을 때 주위를 슬쩍 살폈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자, 마스크를 잠시 열었습니다. 입과 코 주위를 적시는 습기를 몰아내야겠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코를 자극하며 머리가 상쾌해짐을 느낍니다.


지난해 가을입니다. 대출받은 책을 제때 반납하지 못했습니다. 여행 날짜와 맞지 않아 신청하고 떠나려던 것이 들뜬 기분에 그만 잊고 말았습니다. 책을 지닌 채 떠났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이틀이나 기간을 초과했습니다.


“이틀간 대출 정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코로나 유행 시기에 갈 곳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하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입니다.


“어르신, 그동안 우수 고객이셨네요! 벌점을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소설책 한 권, 수필집 한 권.’


두 번의 미소와 두 번의 목례를 보내고 돌아섭니다. 두 번의 답례가 뒤따릅니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1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