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소에 비해 잠에서 일찍 깼습니다. 요즈음은 책을 손에 잡고 활자와 눈 맞춤을 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조금 보태면 오후에는 운동한다는 핑계로 두어 시간 산책을 곁들입니다.
습관대로 물을 한 컵 마시고 책을 들었습니다. 김홍신 수필 중 ‘거리에서 만난 스승’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 장은 아니고 어제 읽다 덮어 두었던 다음 페이지입니다. 어제 마지막으로 읽은 ‘행복해지는 최상의 방법’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 글을 한 편 써볼까 했는데 위의 내용을 읽고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전철의 지하도 계단이나 시장 바닥 등에서 거지를 봅니다. 그들은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 거지는 지정된 장소에서 구걸합니다. 그 숫자도 많이 줄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나 젊은 시절만 해도 거지들은 집마다 방문하거나 길 등 아무 데서나 손을 벌렸습니다.
나는 거지들에게 돈을 주어본 때가 별로 없습니다. 어려서는 돈이 없었고 젊어서는 그들이 자력갱생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내가 거지를 멀리한 것은 몇 번의 속임수에 내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거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살며시 다가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천 원만 주실 수 있을까요. 깜빡하고 지갑을 놓고 나와서……".
두 손을 모으고 수줍은 표정을 짓습니다. 두말없이 지폐를 꺼내어 손에 쥐여줬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는 아침 일찍 또는 밤늦게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병원 앞에서도 있었습니다.
김홍신은 지하철역의 계단에서 우연히 거지를 발견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의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잠시 관찰했습니다. 거지의 동냥하는 모습이며 적선하는 사람들의 행태입니다. 그중 한 시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바구니에 놓고는 합장하며 돌아섰습니다. 감동한 그는 앞서가는 여인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 유명한 소설가 선생님 아니세요.”
반가운 표정을 짓는 그 사람과 행동에 대해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것은 아니지만 여기 제 책을 한 권 드리겠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 책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시지요. 저는 선생님의 책을 서점에서 꼭 사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은 언제인가부터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정치권은 편 가르기의 정도가 극에 달했습니다. 상대방을 거꾸러트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분위기도 덩달아 싸늘해집니다. 한마디로 말해 정이 없는 사회를 향해 달려갑니다. 오죽하면 정치는 오류, 기업가는 삼류, 시민은 일류라는 말을 하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이런 와중에도 시민들은 정도를 걷기 위해 열심히 앞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재해 현장에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 교통사고 현장에서 시민을 구하기 위해 힘들을 합쳐 사고 차량을 옮기는 사람들, 홀로서기로 힘겹게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게는 길의 방향을 몰라 묻는 사람에게 가던 길을 잠시 미루고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좀 더 눈을 들어 살펴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기는 합니다. 이유는 야비하거나 악한 사람보다는 선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살맛 나는 세상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운동화 끈이 풀렸네, 잘못 밟으면 넘어지겠다.”
서로에게 관심을 두는 작은 배려가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갑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스승이 있습니다. 꼭 사람만은 아닙니다. 자연물들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좋은 것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나쁜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저런 것은 아닌데…….'
계절을 아는 식물들, 그들은 때를 압니다. 말을 하지 않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갈무리하며 기다릴 줄도 압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새끼를 낳고 독립하기까지 사람 못지않게 보살필 줄도 압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평소에는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거야, 바로 저거야…….
우리의 스승은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좀 더 겸손한 마음일 때 스승은 우리 주위에 모여듭니다. 어느 날입니다. 밝은 마음으로 클로버의 꽃을 바라볼 때입니다. 꽃이 예쁘다고 느꼈는데 곧 네 잎 클로버를 무더기로 발견했던 것처럼, 스승을 발견하는 것은 행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