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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14. 모두가 천재 20210707

by 지금은

음악 연습실에 엄마를 따라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뭐 하는 사람.”


“젓가락 두드리는 사람.”


커피숍에 들렀습니다.

커피잔을 나르는 사람을 보며 물었습니다.


“뭐 하는 사람.”


“만화 그리는 사람.”


쉬는 틈을 타서 종종 만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너는.”


“음, 나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


엄마는 음악 연습실에서 드럼을 치기 위해 앞 머리칼을 뒤로 모아 묶었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그리던 아들의 손이 순간 멈췄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도화지를 뒤집었습니다. 가지런히 모인 머리칼이 그려졌습니다. 다시 도화지를 뒤집었습니다. 머리칼이 뒤로 숨었습니다.


아이는 집 앞의 벚꽃 나무를 그렸습니다. 나무 둘레를 살펴보던 꼬마는 도화지를 뒤집었습니다. 나무 둥치 뒤편에 핀 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양면 도화지를 사용할 줄 압니다.


나도 천재입니다.

화선지에 글씨를 씁니다. 왼손입니다. 오른손과는 반대 방향으로 시작합니다. 끝맺음 역시 그렇습니다.

내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말합니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다.


“화선지를 뒤집어 놓으셨군요.”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화선지를 뒤집습니다. 뒤집힌 글씨를 평합니다. 그들은 내 천재성을 알지 못합니다. 알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천재라는 것을 내가 알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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