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1 그날

51. 알고 떠나면 20210720

by 지금은

「서울 문학 기행」이라는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부제는 ‘시와 소설의 사연 깃든 서울을 찾아서.’입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좀 심심하다 싶으면 지금도 서울 구경을 합니다.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지리나 역사 문화에 대해 잘 알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그곳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학교 공부와 현실적 삶의 어려움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자 잊혀 가던 서울이 마음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서울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했던 곳을 시작으로 학업을 마치기까지의 옮겨간 장소들이 줄지어 눈에 어른거립니다. 이사를 참 많이 했습니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양 손가락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자그마치 삼십여 회나 됩니다. 생활이 힘들다 보니 우리 가족은 일 년에도 서너 차례나 이사하기도 했습니다. 장소를 여러 번 옮기니 지리에도 밝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울은 사오십 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서울뿐만 아닙니다. 내 삶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지만, 아예 짐작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한 곳도 있습니다.


조심스레 책을 열었습니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시골의 많은 사람이 서울 구경이란 말만으로도 설렘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골과 서울은 모습 자체로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조선 오백 년의 역사와 해방, 전쟁을 겪고 가난과 갈등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중심 무대입니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종로를 감싸고 있는 서울역, 남산, 서대문, 동대문 지역입니다. 그중 종로 일대는 내 발길의 중심 무대입니다. 옛 문화재들이 많기에 큰 지식은 없으면서도 이곳으로 마음이 향합니다. 서울에서 활동했던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의 세계를 미리 알아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때늦은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그들이 활동했던 곳들을 거의 빠짐없이 누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지식을 쌓았더라면 수박 겉핥기식의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아도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우연히 윤동주 시인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춘 분을 만났습니다. 운 좋게도 그분은 우리들의 안내자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눈에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윤동주의 문학관, 하숙집을 비롯한 그의 발자취를 함께 더듬었습니다. 그와 문학을 교류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나는 윤동주의 시 중 ‘별을 헤는 밤’을 좋아합니다. 그 시를 암송하다 보면 내 어린 시절의 고향마을과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알아간다는 건 어려서나 나이 들어서나 즐거운 일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와 반대로 활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것이 맞느냐가 아니라 ‘관심’이란 말로 답을 해야겠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또 다른 문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생각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