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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50. 서투름에 대하여 20210719

by 지금은

“숫자가 잘못 적혀있어요.”


내가 물건을 받고 누군가에게 보낸 영수증입니다. 곧바로 부본을 확인했습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0'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나는 유독 숫자에는 약한 편입니다. 전에는 꼼꼼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하지만 가끔 실수합니다. 물건값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도 가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어려서야 경험이 없어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 더 정확하고 빈틈이 없어야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책을 읽어도 내용의 저장이 잘되지 않습니다. 찾아가는 곳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서슴없이 곧잘 다니던 길인데 요즈음은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에 달고 다니는 내비게이션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서 차를 갈아타지? 어느 방향이지.’


순간순간 발걸음이 멈칫합니다. 잠시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봅니다.


“여보, 여기잖아요. 전에는 다람쥐가 알밤 줍듯 잘도 찾아다니더니만.”


맞습니다. 늘 아내가 내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가끔 핀잔을 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발걸음도 눈에 띄게 느려지고 조심스럽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등불을 끈 밤이면 거실에서 서재나 방으로 갈 때 발을 끌면서 더듬거립니다. 눈대중이 잘되지 않습니다.


젊을 때의 생각입니다. 연세 든 분들이 나들이하는 모습을 보며 느리고 굼뜬 행동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분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것만 같았던 세월이 모르는 사이에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을 다잡지만, 오늘 같은 실수에는 좌절감으로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겠어요. 신이 아닌 다음에야 이럴 때도 있다고 하고 살아야지요.”


아내는 삶의 흐름을 잘 읽어내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속마음을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행동이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날이 그날입니다. 낙천적이라는 생각에 어쩌다 비위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갈수록 내 행동이나 마음이 위축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요즈음은 내 마음을 다독여 보려고 음악 감상의 시간을 늘리고, 사랑, 감사, 인정, 명상 등의 내용을 주제로 한 책들을 읽습니다. 여행기도 읽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제어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나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더 천천히 생각하고, 더 천천히 말하고, 더 천천히 행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편이 답답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내가 답답하지 않으면 됩니다.


저녁때가 되자 한낮의 더위가 좀 수그러드는 듯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평소의 습관대로 두어 시간 걷다 보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습니다. 잠시 나를 생각하다가 나를 곧 잊어버려야 합니다.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노을 주위에 모여든 구름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하루도 긍정을 생각하는 삶이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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