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21 그날

53. 중복 20210721

by 지금은 Dec 02. 2024

요즈음은 안전 문자가 쉼 없이 날아옵니다. 창가에 햇살이 찾아오자 ‘또르르’하고 귓전을 파고듭니다. 휴대전화를 펼쳤습니다.


‘불볕더위가 지속되니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물 자주 마시기, 실외에서는 안전 수칙(물, 그늘, 휴식)을 준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보가 일찍 찾아온 것을 보면 오늘도 덥기는 더운 모양입니다. ‘또르르’ 아침 식사를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문자가 도착합니다. 코로나19 확진 인천 128명 참고 바랍니다. 며칠 전에 코로나19 방역 지침 4단계를 발령했습니다.


‘딩동딩동’ 현관 벨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물건만 보이고 택배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벨 소리를 남기고 제비처럼 날쌔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나 봅니다. 유월 중순에 감자를 먹다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옥수수 먹을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에 곧바로 인터넷 주문을 했는데 보름이나 지났습니다. 성급하게 맛을 보려고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기다리라는 말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순간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알이 덜 여물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마음이 급했습니다.


점심에는 감자와 옥수수로 끼니를 대신했습니다. 감자 맛은 좋은데 옥수수 맛은 생각대로 덜했습니다. 제대로 맛보려면 칠월 말 정도에 주문해야겠습니다. 참외는 미리 맛을 보았고 수박은 며칠 전에 사 왔습니다. 여름의 맛들이 모였습니다.


나는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추억이 낚싯줄에 망둥이 걸리 듯 줄지어 올라옵니다. 고향 마당의 옥수수수염을 턱에 붙인 일, 앞니 빠진 중강 새의 놀림이 싫어 옥수수 알을 이빨 사이에 끼웠던 일. 모깃불이 초가집을 감싸는 한여름 밤 옥수수 알을 따듯 별을 헤아리던 일, 별들과 속삭이는 내 시선을 끌기 위해 호박꽃이 수놓은 담장을 넘나들며 별보다 더 반짝이는 개똥벌레, 별빛을 끌어안고 서쪽으로 굴러가는 대낮 같은 보름달, 마당은 밤이 깊어져 갈수록 조용했습니다.


서른을 넘겼을 무렵 이종형의 처가댁에 놀러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고요한 밤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왁자지껄했습니다. 강릉은 고향마을과 매우 달랐습니다.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그렇습니다. 산봉우리들에 갇힌 우리 마을과는 딴판입니다.


“처음 뵙는 사돈인데 뭐 대접할 만한 것이라고는 옥수수밖에 없어서.”


두 사람이 함께 들고 온 큰 광주리는 만삭의 임산부 배처럼 불룩합니다. 주인 마음에는 그것도 약소해 보였는지 또 다른 광주리를 들고 왔습니다. 옥수수 알처럼 영근 이야기로 먼동을 맞이했습니다.


판매자의 사이트를 방문했습니다. 주문한 사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지루한 흔적을 보입니다. 아직 배달받지 못한 사람의 문자입니다. 옥수수를 먹는 한 여름의 추억을 빨리 불러오고 싶습니다. 별을 세듯 날짜를 셉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1 그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