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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81. 햇살이 따갑기는 해도 20210810

by 지금은

입추가 지나고 오늘이 말복입니다. 덥다고 하는 사이에 어느덧 삼복이 지나버렸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제는 열대야도 수그러듭니다. 밤에도 방 안의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잠을 설쳤는데 이삼일 전부터는 중간에 깨는 일이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외출했습니다. 그동안 외출은 아침 일찍이 거나 오후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해 걸음에 나갈까 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멋지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모자를 썼지만 아직은 목덜미가 따갑습니다. 챙이 짧은 이유입니다. 직사광선이 목을 겨누었나 봅니다. 팔다리를 내놓았는데도 유독 목덜미로 떼를 지어 달려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네 번째로 더운 더위라는데 올해는 견딜만합니다. 바깥출입을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대부분 사람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활동이 적은 나는 집에서 호사를 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소 미안한 감이 들기도 합니다.


아들이 칠월 말경 휴가를 얻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함께 피서를 갔을 텐데 올해는 꼼짝없이 집에 갇혔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4단계 경계경보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되도록 사람들의 모임을 자제하라고 합니다. 저녁 여섯 시 이후는 음식점에도 이인 이상 집합 금지를 내렸습니다. 예식장에도 마흔아홉 명 이내만 집합을 허락했다. 나는 정부의 시책에 적극 동참합니다. 우리 세대는 개인보다 나라가 우선이라는 애국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모임을 자제하라는데 외출하니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을 피해 홀로 움직입니다. 매일 집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람이라도 쐬어야 합니다. 소의 부리망처럼 마스크를 한 채 운동 겸, 산책 겸 집 근처의 공원을 걷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에 유난히 멋진 구름이 떠 있습니다. 높은 건물에 가려 온전히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놓칠까 염려되어 곧장 집 앞의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아깝습니다. 이곳에서는 마음에 맞게 그림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구름이 겨우 건물을 벗어났습니다. 건물을 가리고 구름만 찍으려 하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멋진 모양이 아파트 옥상에 걸릴 듯 말 듯합니다. 여백을 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눈으로만 감상하다가 찍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가을입니다. 하늘이 그렇고 멀리 보이는 산도 그렇습니다. 매미 소리도 그렇습니다. 부들도 그렇습니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분수도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수영하는 잠자리가 그렇고, 철 모르는 코스모스도 그렇습니다. 가을 코스모스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유월이면 고개를 내밉니다. 장미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꽃을 피워 냅니다. 그래도 가을꽃이라는 생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미리 가을을 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라, 사과가.’


풋사과가 식탁에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송에서 나를 만나려고 달려왔습니다.


“맛 좀 봐요. 어제 아침에 신청한 사과가 빨리도 찾아왔어요.”


인터넷으로 신청했는데 하루 만에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아내의 말처럼 아직 맛이 덜 들었어도 사과 맛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좀 마음이 성급한가 봅니다. 옥수수를 신청했을 때도 맛만큼이나 조금 덜 여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사과라서 그런지 맛은 덜해도 풋풋함이 느껴집니다. 아직 여름이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름이 다하고 가을의 햇살에 맛을 담아야 합니다.


조금 성급하기는 해도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눈치를 보니 가을 맛이 느껴집니다. 아직 한 낮이 따갑기는 해도 여름을 눈치 볼 일은 아닙니다. 몸이 후끈하다면 물을 몇 바가지 뒤집어쓰면 됩니다. ‘휘릭’ 바람이 창문을 넘었습니다. 잠자리를 넘보자 열린 창문이 반쯤 가로막았습니다. 덥다고 해도 추운 겨울보다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올 더위도 이렇게 내 곁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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