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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6. 혼식의 강요 20211218

by 지금은

눈을 뜨자마자 주방으로 향합니다. 말없이 접시를 받아서 들었습니다. 차를 컵에 따릅니다. 요즈음의 아침 식사는 늘 그렇습니다. 밥을 먹은 지 오래됐습니다. 간단한 식사입니다. 시장에서 집으로 올 때는 이미 반 조리된 것들이 손에 들려있습니다.


오늘은 샌드위치입니다. 안에는 달걀 치즈, 아보카도, 토마토가 자리 잡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요와 이불 사이에 이런 것들이 들어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자리가 불편했던 때문일까. 지금의 맛은 별로입니다. 늦잠을 자기도 했지만, 입안에 도는 짠 기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천천히 씹어야 합니다. 뒤에 맛은 변할 수도 있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투정하기에는 늦은 나이입니다. 아내가 정성껏 해주는 음식을 타박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핀잔입니다. 그보다 입만 가지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이 매일 짠 것은 아닙니다. 아내는 늘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조용히 구상 중입니다. 한 번은 떡국, 한 번은 만두, 또 한 번은 김밥, 피자……. 그러고 보니 아침은 대부분 밀가루 음식이기는 해도 변화가 있습니다.


짠맛에 마음이 뒤틀렸기 때문일까. 갑자기 초임지의 학교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점심시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차가운 도시락입니다. 그때는 나라의 쌀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그 이전도 매일반이기는 했습니다. 쌀뿐일까. 국민이 먹고살아야 할 곡식이 부족했습니다.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시절입니다.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혼분식을 장려했습니다. 쌀을 절약하자는 의미입니다.


학교에도 영향이 미쳤습니다. 1970년대 초 내가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의 도시락 검사를 했습니다. 학급 명부에는 교육청에서 정해준 검사표가 있습니다. 쌀밥을 싸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선생님이 학급 명부를 펼치고 도시락을 점검하며 ○, △, ×표를 했습니다. 쌀을 적정량 이상으로 섞어온 아이에게는 ×표입니다. 일부의 부유층 부모는 자녀의 도시락 위에 보리쌀을 얹고 속에는 쌀밥을 숨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형사의 재주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용케도 찾아냈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는지 도시락을 뒤집어 뚜껑 위에 밥이 보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교육청 관계자가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의 도시락도 검사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보태고 보탠 말일 겁니다. 규정 이상이라고 생각이 되자 밥을 물에 말아 알갱이의 숫자를 세어 퍼센트를 냈다고 합니다. 철저한 규범에 따라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로 보아 외국에서 쌀을 마음껏 수입해 오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이때 정부의 수출 희망이 100억 불입니다. 지금의 수출액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해야겠습니다. 1980년을 향한 정부의 수출 목표입니다. 많은 사람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무슨 재주로 한다는 거냐. 하지만 우리는 1977년도에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서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신념 때문입니다. 지금은 중소규모의 회사의 수출액도 그 정도는 될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개인의 삶은 어떠합니까. 옛날에는 못 먹어 일찍 죽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너무 먹어 고생을 자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각종 성인병이 늘었습니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커지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면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수출과 수입을 합쳐 일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한 사람당 국민소득도 삼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국민은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치지만, 경제적 삶이 여유로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최빈국에서 부유국으로 변모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도움을 받던 국가가 어려운 나라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국가의 지도자와 모든 국민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낸 결과물입니다. 어느 한 시기에는 남의 나라에 예속되었고 또 한때는 전쟁의 참화를 겪었습니다. 이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운 것은 국민입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라와 개인의 불행한 일들도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이제는 나라에서 혼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알아서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혼식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쌀값이 잡곡에 비해 월등히 비쌌습니다. 지금은 오리려 잡곡이 비쌉니다. 옛 추억에 한 때는 보리밥집이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있습니다. 나는 보리밥을 먹기 위해 애써 찾아가지는 않지만, 보리피리의 추억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보리밭을 지나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어보았습니다. 예전의 그 흔한 보리밭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전거나 수영의 솜씨를 잃어버리지 않듯 피리의 실력은 여전했습니다.


“여보, 웬 쌀밥이야.”


“요즘 혼식을 했잖아요. 모처럼 쌀밥 생각이 났어요.”


입안이 부드럽습니다. 달콤함이 감돕니다. 어릴 때 일입니다. 생일날과 명절날만 쌀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역국만 있으면 오늘이 내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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