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중언부언 20240103

by 지금은

“그런 일이야 뭐 다반사지.”


흔히 듣던 말입니다. 여름철이면 모기에 물리는 것은 으레 있는 일입니다. 서울에 살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습니다. 손님 대접 잘하겠다고 잠자리에 모기장을 쳐 주었습니다. 모기장이 흔하지 않던 시절, 장날이 되자 서둘러 마련했습니다. 미리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칭얼대던 동생이 밤잠을 설치지 않고 잘 잤습니다. 편하게 잘 잘 줄 알았던 친구가 아침에 일어나자 팔다리를 긁었습니다. ‘왜 그래’ 하고 물었습니다. 모기에 물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긁어 부풀어 오른 자국이 보입니다. 피부색이 붉습니다.


“모기장 속에서 혼자 잤으면서도 뭘 그래.”


몸을 뒤척이는 동안 모기장의 틈새로 들어갔나 봅니다. 온전히 그 모기에 물렸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친구가 잠을 설쳤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모기약을 미리 뿌려 놓아야 했을 거라며 우리야 뭐 물리는 것은 다반사라고 했습니다. ‘다반사(茶飯事)’ 흔히 있는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나중에야 정확한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말합니다. 옛사람들은 다반사라는 말을 통해 일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한 끼를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고 한나절 물을 마시지 않아도 갈증을 느낍니다. 지금이야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니 먹고 마시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예전에는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수렵시대, 농경시대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오죽하면 곡식의 신, 물의 신을 받들었겠습니까.


요즘 점심시간이 되면 가끔 직장인들을 눈여겨봅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 전문점에서 음료수를 한 손에 들고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이 흔히 눈에 뜨입니다. 한두 사람이 보이기도 하지만 무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밥보다 잠이 좋아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빵 한두 조각으로 대신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점심이 첫 식사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점심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농경시대에 힘쓰는 일이 많으니 하는 말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드는 삶이 자연에 동화되어 아침 식사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출근시간에 얽매인 것도 아니고 보면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식사 중 아침이 주인공의 자리를 잃었습니다. 점심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점심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심(點心)은 마음속으로 식사를 했다고 점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옛날의 어려웠던 삶을 들춰내는 게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게 점차 일반사람들에게 퍼지면서 아침과 저녁 사이의 식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점심은 고사하고 끼니를 걱정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맛 집을 찾아다니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식생활의 습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밥과 국이 주를 이루던 시대를 지나 한두 끼 빵으로 해결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삼시 세끼 갖춰 먹을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숭늉을 마시고 일부의 사람들이 차를 마시던 시기를 지나 시간을 다투는 바쁜 삶이지만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사색의 시간을 갖는 여유로움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세계의 어느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반사’ 한자의 뜻 그대로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일컫는 말로 우리 곁에 정착된 지 오래입니다. 불교에서 일상다반사는 평상심이 곧 깨달음과 연관돼 있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평상심이 유지되려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바쁘게 뛰어왔지만 새해에는 남과 견주는 생활이 아니라 내 안에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반사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빵 한 조각에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뱃속을 채울 수 있지만, 하루에 한 번쯤은 잠시라도 먼 곳을 응시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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