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만행(蠻行) 20240104

by 지금은

‘물이 끓는 솥 안에서 돌이나 반지를 건져낸다. 이때 손이 다치지 않은 자가 재판에서 이긴다. 뜨거운 쇠를 손으로 들고 일정한 거리를 걷거나 땅에 깔아놓은 아홉 개의 쟁기 위를 맨발로 걷는다. 이때도 다치지 않은 자가 이긴다. 양손을 묶어 물속에 넣는다. 이때는 물에 가라앉은 자가 이긴다. 왜냐하면 깨끗한 물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니까. 제비를 뽑아 죄를 가린다. 마른 빵을 한꺼번에 먹는다. 체하지 않고 먹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원고와 피고가 십자가 앞에 서서 양팔을 수평으로 든다. 먼저 팔을 내리는 자가 지는 것은 당연하다. 살인 용의자를 피해자의 관 옆에 세운다. 피해자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면 그는 틀림없이 범인이다.’ 앞에 나열한 것 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것들을 신명 재판이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피고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시련을 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재판 방식입니다.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하였으며, 재판을 거부할 경우에는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마녀재판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재판은 교회 안에서 신부들이 입회한 가운데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신이 중세를 지배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앞서 기독교가 존재했고 신이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국가보다 신이 우선했습니다. 국가의 기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교황이 권력은 대단했습니다. 신명재판, 신은 공정했을까요? 악의는 없었을까요. 문헌에서 중세 기독교의 이면을 찾아보거나 유럽의 기독교 성지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성스러워야 할 곳에 의외로 다양한 고문도구가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신은 위대합니다. 그 옛날 먼 곳과는 사람들의 교류가 없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고문의 도구가 있다는 것을 문헌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인두, 쇠사슬, 칼, 밧줄…….


왜 신명재판입니까. 재판의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용된 것은 불, 물, 독, 세 가지가 주류를 이룹니다. 콩을 먹고 살아남으면 무죄, 사망이면 유죄입니다. 이 콩은 알칼로이드라는 독을 지니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당당하게 콩을 섭취해서 목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 바로 뱉어내어 살아난다고 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겁이 나서 천천히 먹다가 독이 온몸에 퍼져 사망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종교를 폄하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은 위대합니다. 그러기에 태고로부터 사람들은 그 많은 신을 믿고 아직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신은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불경이든 성경이든 가리지 않고 틈틈이 보고 이면의 이야기도 흥미 있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신을 믿을까요, 아니 믿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반반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과학적 증명을 보면 뭐, 그렇지 하다가도 뜻하지 않은 자연의 섭리를 대하는 순간 그래도 하느님 하고 생각을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신은 자비롭다고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글을 통해 발견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일들이 그렇고, 불교에서 말하는 업경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죄와 벌은 항상 따라다닙니다. 작은 죄를 용서해 주기도 하지만 형벌은 혹독합니다. 하느님이 인류에 대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쉽게 말하면 착하게 살고 죄를 짓지 말라는 게시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응하며 살아갈까요. 성선설을 생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형벌이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이와 반대로 인간은 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성품의 변화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서두의 행동처럼 신은 사리판단이 부족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것은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형벌을 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득권을 가진 일부입니다. 마녀 사냥은 계급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억압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가진 자의 횡포입니다. 권력자의 횡포일 뿐입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이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살아있습니다. 독재자, 부정 축재자들입니다. 지식인이 나쁜 마음을 가지면 더 큰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죄를 물어야 한다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합니다. ‘나 누구누구인데.’ 말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한동안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다른 말을 지어내볼까요.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 약자의 안타까움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나는 신이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 안의 천사이고 악마입니다. 모든 사람이 삶을 순화하려고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지려니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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