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주전부리입니다. 이 겨울에 뻥튀기라고요? 이 계절이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어려서 입에 밴 맛이 어디 가겠습니까.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먹어봤지만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에 올여름부터 맛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쉬는 날 커넬워크에 들렸는데 뻥튀기를 팔고 있어 한 묶음 샀습니다. 식구들과 먹다 보다 보니 성이 차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푸짐합니다. 강냉이, 쌀, 밀쌀, 가래떡 튀김……. 어릴 때 기억을 더듬습니다. 떨어졌나 싶었는데 오늘 배달이 왔습니다.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습니다. 어릴 때 기억이 고향마을로 줄달음칩니다.
‘뻥이오’ 속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있습니다. 뻥튀기 아저씨가 외쳤습니다.
“뻥이오.”
뻥튀기의 검은 입이 열리는 순간 사계절이 밖으로 한꺼번에 튀어나왔습니다. 함박눈 같은 폭풍이 갑자기 나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긴 망태가 일순간 풀썩하고 흔들리는가 싶더니만 흰 연기와 김이 주위에 퍼졌습니다. 바닷가의 짙고 짙은 안갯속에 잠시 잠깐 갇힌 느낌입니다. 나는 피할 사이도 없이 깜짝 놀라 눈을 감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녀석도, 놀라기는. 아기는 아기구먼, 그래서 내가 큰소리를 쳤잖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기계에서 멀리 떨어져 앉았습니다. 이미 구수한 냄새가 내 코를 향해 달려와 매달렸습니다. 크고 긴 망태 속에는 새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쌓였습니다.
잠시 입을 벌렸던 기계는 보리쌀을 한 됫박 꿀꺽 삼키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다시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내 손에는 튀밥이 한 움큼 들려져 있습니다. 입에서는 튀밥이 씹을 새도 없이 살근살근 녹고 있습니다.
“튀밥이 어때? 할머니한테 가서 먹고 싶다고 말하렴. 보리쌀, 콩, 옥수수, 없으면 누룽지라도.”
아저씨는 은근슬쩍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다 힐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상구 엄마가 큰 대바구니를 가지고 상열이네 바깥마당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따라서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손에 쥐었던 튀밥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입안에 군침이 고입니다. 사립문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머니 뻥튀기 왔어요.”
안방의 문에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뻥이오, 왔다고요.”
방문을 열었습니다. 방안은 텅 비었습니다. 부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긴 햇살이 문지방을 넘어 검은 무쇠솥 위에 놀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햇살을 자르자, 빛은 솥뚜껑을 벗어나 몸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사랑방 문을 열었습니다. 넓은 공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햇살을 맞을 준비에 침묵 중입니다. ‘서걱서걱’ 누에의 뽕잎 먹는 소리가 싸락눈 소리만큼 방 안을 채웁니다. 뽕잎이 신선하다는 증거입니다. 한밤중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리는 눈의 소리를 닮았습니다.
“뻥튀기 아저씨가 할머니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뒷마당으로 돌았습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습니다. 동생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감꽃의 꼭지가 마당에 수를 놓았습니다. 평상에도 수북이 쌓였습니다. 고추를 너는 멍석처럼 꼭지를 가득 안고 있습니다.
‘에이, 할머니는.’
“여기는 너희들 자리가 아니잖아.”
평상에 내려앉은 감꽃 무더기를 손으로 거침없이 쓸어내렸습니다. 자리를 빼앗긴 것들이 메뚜기처럼 달아납니다. 제멋대로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평상의 둘레는 푸른 보호막이 쳐졌습니다. 바닥에 벌렁 누웠습니다. 지붕을 넘은 햇빛이 감잎 사이를 뚫고 평상에 내립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춤추는 잎들과 햇살이 내 눈을 어지럽힙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밝음과 어둠이 내 눈썹을 간질입니다. 손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빛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듭니다. 남은 한 손을 눈으로 가져갔습니다.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뜨자 튀밥이 눈 위로 와르르 쏟아집니다.
아차!
‘우리 할머니 집에 안 계셔요.’
상열이네, 상열이네 마당을 향해 달렸습니다. 이웃집 아줌마와 마주쳤습니다. 부대자루를 한 팔로 끌어안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