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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대한(大寒) 춥기는 하지만 20240121

by 지금은

폭설과 함께 휘몰아치는 바람.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던 아이가 귀를 감싸고 쫓겨 왔습니다. 어느새 눈이 내려앉아 마당을 가렸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씁니다. 쓸려가는 눈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이가 쫓겨 들어올 만합니다. 얼굴과 손이 시립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지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절기상으로 보아 대한보다 소한 추위가 더 심할 때 하는 말입니다. 부엌의 물독이 얼어 터졌다고 했습니다. 아궁이 가까이 있는 물독에 금이 갔다니 밤새 얼마나 추웠을까요. 아침에 세수하고 방문의 고리를 잡는데 물 묻은 손이 달라붙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이처럼 추운 날씨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고는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중국 헤이룽장성 일기입니다. 기온이 영하 47도나 된 날이 있답니다. 추위를 소개합니다. 한 사람이 끓는 물을 공중을 향해서 뿌렸습니다. 땅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수증기가 얼음으로 변했습니다.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전봇대에 혀를 갖다 댔다는군요. 혀가 전봇대에 붙는지 알아보려고 했답니다. 정말로 혀가 쩍 붙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뗄 수 있었습니다. 따스한 물을 가져다 녹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럽고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괜한 호기심이 혀를 다칠 뻔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더 큰 추위가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소한과 대한이 욕을 먹기 싫었나 봅니다. 올해는 이때만큼은 춥지 않았습니다. 소한 전에 추웠고 대한과 소한 사이가 추웠습니다. 기온이 급강하했습니다. 중부지방이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때가 있습니다. 기상 예보관의 모습입니다. 몹시 추워 보였습니다. 체감 온도가 25도 정도는 될 거라고 합니다. 두꺼운 옷에 털모자, 목도리에 장갑까지 꼈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얼굴에 추위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이번 대한 추위는 없습니다. 운동 삼아 놀이터에서 공을 차다가 더위를 느껴 점퍼를 벗었습니다. 옷을 나뭇가지에 걸면서 위를 올려 보았습니다. 감나무 꼭대기에 한 알 남아있던 까치밥이 없어졌습니다. 참새, 까치들이 찾아와 놀다 가더니만, 가지만 텅 빈 하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까? 잘 찾아오지 않던 까마귀가 빈 가지 위에 앉아 두리번거리더니 까욱까욱 목청을 돋웁니다. ‘내 몫은 어디 간 거야.’ 기분 나쁜 목소리입니다. 잠시 후 건너편으로 날아가자, 나뭇가지 혼자 흔들리고 있습니다. 새들의 배고픈 시기가 되었습니다. 산수유, 산사나무, 팥배나무를 비롯한 나무의 다북한 열매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달린 나무 열매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몇몇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바닥을 배회합니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나 씨앗을 챙기는 중입니다. 비둘기, 참새, 까치, 지빠귀 등이 보입니다. 까치도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내일모레부터 다시 강추위가 일주일이나 이어진답니다. 이 겨울의 추위는 그렇게 길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삼한사온은 아니어도 사나흘이면 풀렸습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지.’


추워야 겨울이라지만 나는 추위가 싫습니다. 나뿐이겠습니까. 대부분 사람이 같은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어려서는 강추위라도 뛰어노는 재미에 종종 잊을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추위에 민감해집니다. 날씨 예보를 듣는 순간 내일은 꼼짝하지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야겠다고 식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말 지켜질지는 의문입니다. 늘 방안 공기가 답답하다는 생각에 아파트 광장이라도 서성거려야 직성이 풀립니다.

하지만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은 봄을 느끼는 듯합니다. 까칠하던 모습에 생기가 보입니다. 공원의 연못가에 있는 버들강아지도 팥알만큼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집 앞의 목련꽃 눈이 배를 불립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제주도의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봄이 슬그머니 겨울 옆으로 다가와 씨름을 하자고 귀찮게 할 것입니다. 밀고 밀리는 씨름이 반복됩니다. 승자는 누구일까요. 은근과 끈기로 무장한 봄이 동장군의 등을 서서히 밀어내겠지요.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봄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틈을 보아 바깥을 휘저어야겠습니다. 내 등 뒤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보, 옷 든든히 입고 나가요. 장갑 꼭 끼고.”

봄이 힘입어 빨리 찾아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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