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호칭의 만남 20240122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뭐야, 어르신이지. 아니 어르신이 아니고 선생님. 음……”
아침 산책을 하기 위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인사를 합니다. 반갑게 목례했는데 아이가 나의 얼굴을 보고 한 말입니다. 아이 엄마가 당황한 듯 이어 말했는데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색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니 유아원이나 유치원에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방을 멘 모습이 귀엽습니다.
“괜찮아요, 나 할아버지가 틀림없는걸.”
아이 엄마가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르신이면 어떻고, 선생님이면 어떻습니까. 나름대로 상대를 존칭 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백발이 된 탓입니다. 의도든 아니든 가끔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 뒷머리를 본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말 상대가 점점 줄어들다 보니 요즘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아침 뉴스를 보니 올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고 합니다. 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노인 문제는 국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노인이라는 용어를 대체할 호칭을 생각해 보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는 노인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회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경기도의회는 노인을 ‘선배 시민’으로 부를 것을 조례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시는 이보다 앞선 노인을 대신할 용어로 ‘어르신’이라는 말을 선택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아이 엄마의 말처럼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 노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막 노인으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옛날과는 달리 외모에 있어서 과거의 노인과는 다릅니다. 아직은 젊음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좋아지며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정년을 맞을 나이지만, 아직도 활동할 여력이 충분한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고령인구는 늘어납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 국가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퇴직하고도 재취업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에서는 생산인구와 고령인구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노인의 연령을 높이자는 말이 떠돌고 이를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이야기는 노인의 연령을 70세부터 할 거냐 75세부터 할 거냐 의견이 분분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노인의 나이가 많아질 것은 분명합니다. 아울러 고령사회. 초고령사회의 말은 이미 수년 전부터 들어 귀에 익숙합니다. 합니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빈곤을 함께 가져옵니다. 일할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누구이겠습니까. 자식과 친척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후손들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젊은이 세 명이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생산인구의 감소와 노인 인구의 증가는 곧 경제활동으로 연관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노인에 대한 호칭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선생이라는 용어를 빌려왔으면 합니다. 선생(先生),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학교에서는 남을 가르친다는 의미로 부릅니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선생(先生)은 ‘남을 높여 이르는 말’,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용어가 뻥튀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여사,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신사, 맹인, 봉사가 시각장애인, 귀머거리가 청각장애인, 바보가 지적장애자……. 용어를 달리했다고 뭐 자체가 달라졌습니까. 용어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인식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익숙한 말을 버리고 낯선 용어를 빌려 쓴다는 게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인을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류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같기는 하지만 여사님, 신사님, 어딘지 좀 어색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 불러도 언제 들어도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고유 언어입니다.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아이들이 나에게 ‘할아버지’하고 부르면 입을 방긋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