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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이런 날도 있어요 20240128

by 지금은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 등이 따스합니다. 몸을 뒤척이다 자세를 바르게 고쳐 잡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주방에서 기구를 만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아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가 싫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나 잠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꿈결에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몸이 나른합니다. 봄도 아닌데 왜 그래, 늘 꾸는 꿈이니 방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내용을 잊고 말았습니다. 꿈을 꾼 것인지 꾸지 않은 것인지도 희미해졌습니다.


강아지라도 된 양 무의식적으로 식탁에 다가갔습니다. 내 아침 식사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차 한 잔을 들고 접시를 탁자에 놓았습니다. 간단한 먹을거리입니다. 차를 한입 물고 그릇을 내려다봅니다. 고구마, 송편, 바나나가 가지런히 자리했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서 그릇 하나를 살핍니다. 야채 그릇입니다. 상추와 양배추가 있습니다. 찐 달걀도 한 알 있습니다. 느낌으로는 간단하다고 했지만, 그릇을 모두 비우면 배가 찰 게 분명합니다. 나는 채소를 좋아합니다. 이런 이유로 아내는 될 수 있으면 채소나 과일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무엇을 쓸까 하고 주제를 떠올리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탐탁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한 편 썼습니다. 매듭을 짓고 다시 읽어보았지만 억지로 쓴 글이라 그런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동안 글을 쓸 소재를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저께부터 생각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생각했지만 늘 순탄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무감각한 척합니다. 전에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반년이나 허송세월을 한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책에 집중하든가, 그림을 그린다. 음악 감상을 한다. 밖으로 나돌아 다닌다는 둥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되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려다 보면 마음에 먹구름만 끼게 됩니다. 책을 들었습니다. 잠시뿐 아니라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음악 감상을 하려고 스피커를 켰습니다. 역시 마음에서 멀어집니다. 괜히 조바심만 생깁니다. 괜히 잡생각만 듭니다. 점차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피곤한 생각이 듭니다. 밤새 깨지 않고 잠을 푹 잤다는 생각이 드는데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슬며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깨어났을 때는 11시를 넘겼습니다. 평소의 낮잠과는 달리 길었습니다. 발에 쥐가 나기에 잠시 주무르고 방안을 서성거렸습니다. 어젯밤 다리가 시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동안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종아리에 보온할 수 있는 보호대를 했지만 보통 때와는 달리 별 효용이 없었습니다.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순면 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이유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간밤에 잠을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찌했던 오늘은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몸도 무겁습니다.


내 게으름에 따라 아내의 점심 준비도 함께 늦었습니다. 일어났을 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탁구 하러 가요.”


분위기를 바꿔볼까 하는 마음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1층 탁구장입니다. 평소에는 탁구 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탁구대가 세 개나 있지만 텅 빈 곳은 늘 우리의 차지입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 동호인들의 탁구가 있고, 평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마주치는 사람뿐입니다. 이용하는 사람이 드무니 시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때나 탁구장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좋은 점입니다. 초보인 우리에게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자주 드나들다 보니 잘 치지는 못해도 이제는 공을 서로 주고받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탁구는 남다릅니다. 서로에게 최대한 받기 좋도록 공을 넘깁니다. 공이 날아다니는 속도도 느립니다. 하지만 왕복하는 횟수는 분명 많이 늘어났습니다. 잘될 때는 40여 번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왕복 횟수가 줄었습니다. 자꾸만 공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고 비껴갑니다. 아내가 눈치를 챘나 봅니다.


“뭐해요. 잘 줘야지.”


냅다 공을 세게 때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두 번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됐든 오늘은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입니다. 뭐 언짢은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한 시간 탁구를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마음이 차분해졌다는 느낌에 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입력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빙상경기의 중계를 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시 잠이나 잘까?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거고, 잔다고 해도 악몽이나 꿀 게 분명합니다.


컴퓨터를 켜고 궁금한 거나 찾아볼까요. 이마저도 여의찮습니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야 할까 봅니다. 뭔가 해보려고 할수록 마음만 불안해지고 머리만 아파집니다. 문틀에 설치한 철봉에 매달려봅니다. 마당에 걸린 빨래처럼 건들건들 흔들흔들 그냥 무심코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럭저럭 어둠이 내렸습니다.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오늘도 늦게나마 투덕투덕 거칠게 글자를 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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