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20240129
140만 유튜버이며 미국의 작가인 마크 맨슨이 한국을 여행한 뒤 올린 영상의 제목입니다. 오늘 아침 24분 정도 영상을 본 사람이 60만 정도입니다. 역동적인 문화를 지닌 놀라운 나라가 왜 우울할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의 영상을 지적했습니다. 하나의 현상이었던 게임의 '성공 공식'이 다양한 산업에 적용됐다는 겁니다.
100점을 받지 못한다면 한국에서는 실패한 겁니다. 100점의 나라이며 일등의 나라입니다. 이런 것이 정말 우울과 연관이 깊습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겁니다. 운동 경기에서 금메달이어야 하지 은메달, 동메달은 숨에 차지 않습니다.
나의 지난날을 떠올립니다. 처음 맞이한 좌절감입니다. 초등학교 때입니다. 처음 실력을 가늠해 보는 시간입니다. 받아쓰기했는데 나는 열 문항 중 세 문항을 맞혔습니다. 기분이 어리벙벙했습니다. 여러 문항을 틀린 몇몇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책을 덮었습니다. 열 문항을 통과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만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한 문항을 틀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더니 책상에 엎드리고 얼굴을 두 팔 사이에 묻었습니다. 한 문제 틀린 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만점을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꾸중을 들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남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부터 경쟁사회에 빠져들어야 했습니다. 과거시험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점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점수뿐이겠습니까. 점수로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눈으로는 측정이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유교문화에 젖은 삶을 이어왔습니다. 나보다 남을 의식하는 사회입니다. 지식과 예의를 존중하는 시대입니다. 내 안의 나를 찾기보다는 남과 견주어 나를 드러내야 합니다. 획일화된 조건 획일화된 사회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
바다나 호수에서 용이 난 것도 아니고 좁은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열악한 환경에서 용이 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사농공상의 시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벼슬아치가 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영의정쯤은 되어야 만족할 수 있으니 그 치열한 다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경쟁은 역사는 물론 야사, 또는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달빛에 글을 읽고, ‘형설지공(螢雪之功)’ 즉 반딧불을 잡아놓고 글을 읽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떤 말이 유행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판검사가 목표인 시기가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고시에 목을 맨 사람들이 청춘을 불살랐습니다. 발표가 나면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어느 집은 동네잔치를 하고, 어느 집은 초상을 치르는 분위기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선거 다음 날 학교에 가는데 어느 골목에서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죽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다음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집안의 풍경입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선거자금으로 썼는데 떨어졌답니다.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빚을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치란 마약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이후로는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는데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보았습니다. 기쁨의 눈물이겠지 했는데 내 추측과는 달랐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서운함입니다. 좀 더 잘해야 했는데 하는 후회의 눈물이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람이라도 도전 의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작건 크건 우리의 삶이 도전의 연속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와 같은 강한 의식이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기에 빠른 기간 안에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부러워하는 국민이 되었지만, 겉과는 달리 속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빈곤입니다. 자신이나 자식의 하는 일이 아직도 100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최고가 되지 못했다는 마음입니다.
내가 아는 아저씨 한 분은 사법시험에서 7번이나 고배를 마셨습니다. 서울의 최고라 자부하는 법대를 졸업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포기를 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에 못지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 소로 등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만 삶의 길은 아닙니다. 자신에 맞는 길을 따라 꾸준히 걷다 보면 목적지에 이를 것입니다. 요즘은 의사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적성과는 관계없이 실력만 된다면 의대에 가려고 합니다. 의사가 되어 경제적 부를 누릴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행복할지 의문입니다. 자기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게 다가오는 행복을 찾는 거로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신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생각을 하니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100점을 고집하지 않는 자세가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