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설날이 돌아올 즈음이면 20240201
달력을 한 장 넘겼습니다. 이해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설날이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설 준비가 바빠야 하는데 요즘은 옛날 같지 않습니다. 시장에 가보니 평소와 별다르지 않습니다. 나이 든 여인네들이 조금 늘었을 뿐입니다. 손에 든 물건의 무게도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설날의 의미가 줄어들었나 봅니다.
시장 못지않게 붐비는 곳이 목욕탕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지만 사람의 숫자가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목욕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집에 샤워 시설이 있으니, 목욕탕에 자주 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목욕탕은 그만 힘을 잃었습니다. 정부 시책에 의해 폐쇄되기도 하고 문이 열렸을 때도 사람들의 출입이 뜸했습니다. 언젠가는 목욕탕에 갔는데 그 넓은 시설을 혼자 사용했습니다. 주위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 좋기는 했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많은 물을 혼자 사용하고 버린다는 게 한편으로는 찜찜했습니다.
코로나가 물러난 후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었습니다. 전과 같지는 않아도 사람이 목욕을 즐깁니다. 집에서 몸을 씻어도 되지만 가끔은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가야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물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떠보니 할아버지와 손자가 수도꼭지 앞에 나란히 앉아 도란거립니다.
“할아버지, 시원해?”
“시원하기는 한데 조금 힘을 주어 밀어야겠어.”
아직은 연약한 아이 손의 힘이 맘에 흡족하지 않은가 봅니다. 두 손으로 등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아이의 등의 살갗을 밉니다.
“아파.”
“박박 밀어야 시원하지.”
할아버지의 말입니다. 아이는 저만치 달아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이 매운 듯합니다. 손을 들어 아이를 부릅니다. 예전 기억이 납니다. 그렇군요. 내가 젊은 시절만 해도 목욕탕에서 종종 듣던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군가의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반대로 누군가 나의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목욕문화의 풍경 중에 전과 다른 모습의 하나입니다. 전에는 목욕하면서 서로에게 등을 내미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등을 서로 밀어주었습니다. 목욕을 자주 할 수 없는 환경이고 보면 자연스레 때를 더 닦아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목욕탕이 북적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번잡스럽습니다.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인은 어쩔 수 없이 목욕하는 사람들에게 머무는 시간을 정해주었습니다. 한 시간 반입니다. 이를 어기면 나가라고 재촉하여 손님과 옥신각신하기도 했습니다.
‘목욕탕에서 속옷을 빨지 마세요.’
이런 문구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게 된 이유는 목욕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말입니다. 직접 본 일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목욕탕 문을 닫을 시간에 즈음하여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에 보따리를 들었습니다. 꽤 커 보였습니다. 욕탕에 들어온 사람은 이불을 꺼내 빨기 시작했습니다. 청소하려고 들어온 종업원이 이를 발견했습니다.
“여기는 빨래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따스한 물을 그냥 버려서야 쓰겠어.”
옥신각신하다가 종업원은 주인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타협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이번 한 번으로 끝을 내겠다고 약속했다는군요.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봅니다. 중학교 시절은 그렇다고 하고 그보다 더 이전은 어떠했을까요. 내 경우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겨울철에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습니다.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 동안에는 손발과 얼굴을 제외하고는 몸통을 씻는 일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맘때쯤입니다. 설을 앞두고 목욕다운 목욕을 했습니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남자는 헛간 구석에서, 여자는 부엌에서 몸을 씻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전까지는 부엌에서 이후에는 헛간에서 목욕했습니다.
사람들이 목욕탕으로 하나둘 들어오고, 하나둘 빠져나갑니다. 아무래도 등에 미련이 남습니다. 누군가 등을 밀어주었으면 하지만 딱히 부탁할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등짝을 한 번 찰싹 때리고는 정성껏 등을 밀어주시던 나 어린 시절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