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소식 20240131
성급한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밖에 나갔다 봄을 느꼈습니다. 포근함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바람까지 없으니, 앞가슴이 따스함이 모입니다. 이십여 일 전에 제주도에는 때아닌 매화꽃이 만발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매화꽃은 2월 말에서 3월 초에 피기 시작하여 3월 말까지 절정을 이루는데 제주도의 매화는 성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달 열흘 이상이나 일찍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상기후가 아닐까 합니다. ‘벌써 봄이 되는 거야.’ 했는데 그 며칠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격한 날씨 변화로 기온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중부지방의 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제주의 기온도 영하로 내려간 것은 분명합니다. 폭설까지 내렸으니, 매화를 비롯한 꽃나무들이 어떠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자연의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주의 꽃 소식에 우리 고장에도 봄의 미소가 있으려니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꽃 중에 매화가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다기에 매화나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집 앞 화단에는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큰 나무를 옮겨놨으니 제법 젊음을 자랑합니다. 중부지방의 개화 시기는 3월 초에서 중순입니다. 설중매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매화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매실나무의 꽃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널리 볼 수 있는 꽃이며 한겨울에 눈을 맞으며 피는 꽃이라고 해서 설중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매화의 꽃망울이 녹두알만큼 부풀었습니다. 가지며 줄기에 생기가 돕니다. 나에게는 서둘러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를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겠지요. 뭐 특별한 건 없고 관심을 두고 관찰한 덕분입니다. 우리 고장에는 본래 매화나무가 없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이 20여 년 전만 해도 갯벌이었습니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외지에서 이사 온 것들입니다. 매화나무라고 해서 다를 수 없습니다. 아파트를 비롯한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함께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나무들 속에 매화나무도 하나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겨울을 나는 동안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같은 고장이면서도 꽃이 피는 날짜가 하루 이틀씩은 다릅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곳의 나무는 일주일 이상이나 개화 시기가 빠릅니다. 어느 해는 열흘이나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내 기록에 의한 것이니 비교적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나무들은 벌써 노쇠한 느낌이 듭니다. 수령이 좀 오래된 나무를 옮겨 심은 때문인지 모릅니다. 껑충한 나무들의 굵은 가지들이 말라 부러지고 작은 가지들도 예쁜 모습에서 벗어나 엉성해 보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일찍 꽃을 피웠습니다. 올해도 그렇지 않을까 보입니다. 어느 것은 팥알만큼 부풀어 오른 게 있습니다.
관심을 기울여 주위를 살펴보니 꽃을 일찍 피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화나무 양쪽으로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한쪽은 아파트, 다른 한쪽은 학교입니다. 사이의 넓은 길 끝은 언덕으로 바람을 막고 있습니다. 반대편은 산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방이 막혔습니다. 찬바람을 건물과 산과 언덕이 막아줍니다. 넓은 녹지대라 건물의 그늘이 다가오지 못해 일조량이 많습니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다가가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해마다 매실을 몇 개 주워 맛을 봅니다. 올해라고 다를 리 없을 겁니다. 도시에 살면서 직접 자연 속의 열매의 맛을 본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마다 열매의 맛을 음미합니다. 봄이면 매실, 버찌, 앵두, 보리수, 오디가 있습니다. 공원의 숲이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나무들을 심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봄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숨겨진 가을 맛까지 보기도 합니다. 귀룽나무 열매입니다. 버찌 모양을 닮았습니다. 맛 또한 비슷합니다. 산사나무 열매, 산수유 열매, 산딸나무 열매를 비롯하여 가을 열매의 종류가 많습니다.
나는 매화꽃을 보는 대신에 나뭇등걸에 앉아 햇살을 품 안에 가득 담았습니다. 지금 매화 꽃망울도 나 못지않게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임이 없습니다. 슬며시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봅니다. ‘춘몽(春夢)’ 나른한 마음에 졸음에 겨워 꿈을 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 한밤중부터 시작된 축구 경기를 본 때문일까요. 막상막하여서 마음을 졸이며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내 머리가 스르르 바닥을 향합니다. 곧 봄소식과 함께 꽃을 눈에 담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