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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명절이 다가오면 20240210

by 지금은

명절이 돌아오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날씨로 말한다면 한 마디로 흐린 날에 비유됩니다. 옅은 구름이 아니고 먹장구름입니다. 곧 비라도 쏟아질 듯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이라면 맞습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해마다 겪는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쭉 그래왔습니다. 특별히 기분 나쁠 것도 없는데 한 마디로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명절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내가 끼여야만 할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명절이 돌아온다고 해서 뭔가 특별히 책임감을 느끼거나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딱히 없습니다. 올해도 명절을 앞에 두고 점차 마음이 쓸쓸해지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평소대로 조용합니다. 오히려 더 조용합니다. 절간이 따로 없습니다. 눈을 떴을 때 주방에서 아내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젯밤입니다. 떡국을 끓일 준비를 하겠다고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는 것도 보았습니다. 끝인 줄 알았는데 뭔가 이것저것 싱크대 위에 내놓습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 하나, 단출한데도 뭐 그리 해야 할 게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숫자가 적기는 해도 때가 되면 양과는 관계없이 준비하는 마음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다. 어렸을 때의 대가족에 비해 음식의 양이 적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없을 뿐입니다.


가족이 세분화하면서 대가족에서 소가족, 핵가족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요즘은 이마저도 일인 가족이라는 말이 더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삶의 여유는 늘었지만 이에 비해 흥이라든가 정이라는 면에서는 옛날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의 해체라고 해야겠습니다. 끈끈한 정이 모래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명절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떠들썩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귀성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뭐 일요일이나 휴일과 비교해서 크게 더 붐비는 것도 없습니다. 오리려 여름철 휴가 기간이 더 붐빈다는 생각이 듭니다.


떡국이 식탁 위에 오르고 아내가 아들을 부릅니다. 이어 나를 부릅니다. 떡국을 앞에 놓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떡 첨이 입으로 향합니다. 만든 정성을 생각해서 떡의 식감이 좋다든가, 국물이 시원하다든가 말이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숟가락만 시소처럼 입을 향해 오르내립니다. 침묵을 깬 건 아내입니다. 냉장고에서 국거리를 꺼내야 하는데 잘못 본 탓에 수육 거리를 사용했답니다. 맛이 어떠냐고 하기에 그제야 맛을 생각했습니다. 빈말처럼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특히 음식 맛에 예민하지 못합니다. 같은 음식이라면 늘 그게 그거라는 마음입니다. 아들은 맛의 감각이 좀 예민해서인지 가끔 투정을 부리지만 오늘 떡국은 식감이 좋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그저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식탁에서 맛이 아니라 고마움입니다. 같이 늙는 처지에 주방을 책임져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예전에야 직장에 다니며 가정의 경제를 등에 짊어졌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기는 감정입니다. 이제는 내가 가정에서 할 일이라고는 별것 없습니다. 외부와 관련되는 집안의 일이 어쩌다 있게 되면 신경을 쓰는 정도입니다.


어제는 송편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해입니다. 설날에 송편을, 추석에는 떡국을 먹은 일이 있습니다. 명절이라고 해서 고정관념을 지켜야 하는 거냐며 아내가 슬그머니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남과 색다른 명절의 추억을 만드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설날에는 혹시나 했지만, 한 번으로 끝을 냈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또 모를 일입니다. 아, 한 가지 있습니다. 후식으로 뻥튀기를 한 컵씩 손에 들었습니다. ‘뻥이오.’ 올해는 뻥튀기처럼 사람마다 희망이 부풀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머리를 끄덕했습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명절의 풍습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친척 식구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어울려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어느덧 차례가 간소화하고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집안의 형제자매가 모이는 일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여행을 하거나 각기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유행하던 ‘명절증후군’이라는 말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여권신장이 되면서 며느리들의 반란이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권 신장을 주장한 결과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어머니가 계실 때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새벽 일찍 형님 댁으로 가야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 자가용차를 타고 갔지만 그전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전날 형님 댁에 가서 잠을 자고 설을 맞이했습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명절 전날 병원에 계시는 형님을 뵙고 집에 찾아가 형수를 만나고 조카 내외와 외식하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제는 명절이라고 해서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평소와 같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거나 즐기는 방향입니다. 아들이 내일은 서울에 있는 미술관에 가보자고 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거랍니다.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의 어릴 때 명절은 왠지 모르지만 늘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서재에서 책을 펼치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거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넓은 길에는 차의 이동도 없고 사람의 발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유리창에 보입니다. 가슴이 허전한 느낌입니다. 오늘은 햇살이 나를 향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구름 낀 날의 명절은 여느 때처럼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모를 일입니다. 나의 명절만 이렇게 쓸쓸한 것인지, 창밖의 나무에서 울던 까치 소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늘 명절을 가져다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의미상 설날입니다. 손가락을 꼽아봅니다. 아니, 아니 벌써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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