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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내가 사랑하는 것 20240223

by 지금은

‘그림책에 기대어 글쓰기’ 강좌 첫 번째 시간입니다. 다 함께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넌 뭐가 좋아?


주인공 오소리의 이야기입니다. 오소리는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한 친구를 위해 자기 집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고 싶었습니다. 다른 친구를 위해 딸기나무를 심으려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를 위해 당근을 심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들의 친구 집에는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가꾸고 있습니다. 고민입니다. 무엇을 해야 친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까? 궁리 끝에 오소리는 자기 집 마당에 둥근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도록 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갑작스러운 물음이 어리둥절합니다.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백발이 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사랑이라든가 좋아함이라든가 하는 것을 특별히 마음에 두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나를 위해 살아온 날이 몇 날이 되는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온 시간이 얼마나 될까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강사는 주제를 주면서 15분 사이에 글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완성해도 좋고 그렇지 못해도 괜찮답니다. 무작정 종이를 펼쳤습니다. 나와 내 주변을 떠올렸습니다. 풍경보다는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앞에 투명한 가림막이 드리워졌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삭막했나 하는 좌절감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주저주저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났습니다. 강사는 목련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제의 풍경을 떠올려 목련과 대비시켰습니다. 그저께 저녁부터 비가 진눈깨비로 변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이 하얀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저기 나무에 눈꽃이 피어났습니다.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눈꽃이 목련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어제 내가 느낀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지나온 과정을 되짚어 봅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일상의 소소함 속에 묻어나는 게 있음을 발견합니다. 웃음 속에 피어나는 것, 기다림 속에 다가오는 것, 무심함 속에서도 갑자기 ‘톡’하고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것,


‘아이의 얼굴, 노랑 민들레, 연애 시절 창가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발걸음 소리,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는데 아침에 꽃잎을 활짝 터뜨린 나팔꽃…….’

사랑한다든가 좋아한다는 것을 특별히 하나로 끄집어낼 수 없습니다. 소소한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덤덤하고 그저 특징이 없는 사람이 아닐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좋은 것을 애써 표현하지 못하고 싫은 것도 애써 표현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표현도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잡아야지 하면서 다가와도 떠나도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고 계절 또한 그러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재미라고는 모르고 사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하루에 말을 몇 마디나 하고 삽니까?”


어느 날 사촌 동생이 내 마음을 콕 찔렀습니다. 부부끼리는 말이나 하고 사느냐는 투입니다. 한술 더 떴습니다. 말도 없이 조카는 어떻게 낳을 수 있었느냐고 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애는 말로 낳는 게 아니잖아 했더니만 방안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학생 때는 어떻고? 우리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 때입니다. 이사를 했는데 그 집의 젊은 엄마가 틈나는 대로 나를 힐끔힐끔 눈여겨보는 눈치입니다. 날짜가 얼마나 지났을까? 이사 간 집이 익숙해졌을 무렵입니다.


“오라! 말을 할 줄 아네. 참 다행이다. 벙어린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머니가 밤늦게 시장에서 돌아오시자 주인댁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그동안의 심정을 말했습니다. 그 집 식구들이 하나둘 말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나의 성격이 뭐 달라졌겠습니까. 묻는 말에 짧은 대답입니다. 침묵을 좋아하느냐고요. 침묵을 사랑하느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에게는 사랑하는 게 없다고, 좋아하는 게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게 없다면 지금까지 살았겠습니까. 사랑이 아닌 듯, 좋은 게 없을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은 사랑이, 좋은 게 조용히 숨 쉬고 있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많아요. 뚱딴지같은 말인지는 몰라도 오늘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오늘의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꼭 밝히라고 하면 이제는 비밀을 털어놓아야겠습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책, 그림과 음악의 세계를 탐구하고, 무엇인가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날그날 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서관과 서점도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냐고요? 어린애의 말과 표정을 빌립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자문자답합니다.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게 뭐 그리 두리뭉실해요?"

"뭐 내가 그렇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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