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내가 좋아하는 20240223
‘책’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겁니다. 이에 못지않게 이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겠습니까. 도서관과 서점입니다. 또 하나 더 꼽으라면 내 집의 서재입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책들이 주인공입니다.
나는 사람들과는 친분이 부족하지만, 책과는 사이가 좋습니다. 모든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를 빼고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는 달리 다정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책을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어려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입니다. 6·25를 겪으면서 곤궁한 삶은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특수 계층을 제외하고는 책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나의 고향 두메산골입니다. 책에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는 학교의 교과서와 천자문, 닳고 닳은 옛날이야기 책이 한두 권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사이에 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좋아지면서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다 보니 우리 주위에 널려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환경입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손에 쥔 책이 학년이 바뀜에 따라 달라졌을 뿐 지금까지 손에서 벗어난 일은 없습니다. 학업을 끝냈을 때는 다시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책을 들었습니다. 학교를 벗어나자,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봉사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 책과 사는 것이 길들고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루라도 책을 손에 들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직장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입니다. 책과 대화를 하다 보니 나도 누군가처럼 글을 쓰고 나의 삶을 후대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읽고 쓰기가 일과입니다.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왼손에는 젓가락을 들 듯 말입니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책은 나에게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침묵을 지킨다든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부담 없이 책이 살고 있는 서점을 찾고 도서관을 드나듭니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혼자 가도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든 안 보든 편하게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데 책이 모여 있는 곳은 예외입니다. 식당, 백화점, 영화관, 전시회 등에 갈 때는 혼자인 게 초라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짝을 진 사람이나 무리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점을 한 가지 덧붙이면 경제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출입이 무한정입니다. 책을 마음대로 뽑아볼 수 있습니다. 책을 사지 않았다고 해서 시비를 걸 사람이 없습니다. 나같이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장소입니다. 큰소리를 치거나 나대는 사람도 없습니다.
설 마지막 연휴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마이어트 뮤지엄에 다녀왔습니다. 그림 전시회로 일리야 밀스타인의 ‘기억의 캐비닛’입니다. 그림에 동화적 요소가 들어있어 마법의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찍 입장을 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점처럼 조용한 가운데 그림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나올 무렵에는 사람들이 몰려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근처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으로 안내했는데 그 규모에 놀랐습니다. 센트럴 플라자 중심에 총 2천8백㎡로 복층 구조입니다. 13m 높이 서가의 은은한 불빛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쌉니다. 서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테이블과 노트북 작업이 가능한 자리도 있습니다. 특히 1층은 지하 1층의 공간을 조망하면서 독서를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총 5만 여권의 각종 장서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가끔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책을 내는 게 소원입니다. 내 나이가 있으니, 글의 편수가 꽤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원고를 정리해서 책을 내보라고 하지만 ‘아직은’이라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대신 인터넷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내 글을 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작가, 그 많은 책 속에 내가, 내 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수많은 책이 출판되지만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보면 ‘글쎄요’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많은 작가와의 대화를 나눴으니 내 생각과 얕은 지식이나마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새 별마당 도서관 천장 위로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삼분의 일쯤 남긴 책을 덮고 일어섰습니다. 갑자기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유롭게 독서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가까우면 내 놀이터가 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