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공 하나에 울고 웃는다. 20240225
“실수를 한 번만 줄였어도 이기는 건데.”
요즘 부산에서 세계 탁구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건강 유지를 위해 탁구를 합니다. 처음에는 이 경기에 관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내가 텔레비전을 통해 틈틈이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합니다. 규칙을 모르던 아내가 어느덧 재미를 느낀 모양입니다.
“어휴,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좋겠네.”
“서비스할 때 왜 라켓을 저렇게 잡는 거야.”
경기 규칙을 비롯하여 선수의 동작에 대해 의문이 가는 장면을 간간이 물어봅니다.
우리는 경기가 시작되는 동안 눈에서 공을 떼어놓지 못했습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눈이 시계추처럼 반복합니다. 한 점 한 점 앞서갈 때마다 경기장을 찾은 것처럼 우리 선수를 큰 소리로 응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드디어 우리나라 대표팀이 4강에 들었습니다. 상대는 세계적으로 최강팀입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도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도 선수 못지않게 우리 팀을 응원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대회를 기대해야 합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환호와 웃음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이야 뭐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눈물을 글썽입니다. 허탈해하는 모습입니다.
‘달걀보다도 작은 공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들썩이다니.’
한 달 전에는 아시안 컵 축구대회가 카타르에서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 대표선수가 참가했습니다. 경기 결과 우리 선수들은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우승을 점쳤는데 4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지만, 기대하던 실력과는 달리 처음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쉬울 것이라고 여겼던 상대나 대등하다는 생각했던 상대나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꺾었습니다. 연장전을 치르고 승부차기를 하며 겨우겨우 제압한 게 두 번이나 됩니다. 상대의 기량이 늘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우리가 졸전을 치렀다는 생각은 국민 대다수의 마음입니다. 공을 쫓은 내내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환희보다는 탄식이 많았습니다.
‘슛 슛,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나라의 축구는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습니다. 우리의 경제력이 상승한 만큼이나 뒤를 따랐습니다. 그만큼 선수들을 육성하고 뒷받침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경기 무대에서도 늘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가 몇 해 전부터 호랑이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월드컵 대회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과 겨루어 4강에 든 때도 있습니다. 축구의 선진국이라는 유럽 무대에 우리 선수들이 진출하여 활약하는 가운데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나는 학생 시절 때만 해도 공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축구, 야구, 배구 등 구기 경기가 열릴 때 눈에 들어오면 시청하는 정도이고 체육 시간을 빼고는 경기에 참여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또래들보다 재간이 없으니, 흥미를 잃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한동안 공을 끈기 있게 다룬 것은 교사로 초임 학교에 발령받은 후입니다. 벽지(僻地) 학교이고 보니 문화를 대할 수 있는 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교통편도 좋지 않아 집에서 출퇴근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습니다. 학교가 소규모라 직원이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일직과 숙직이 밥 먹듯 이삼일 간격으로 돌아옵니다. 학교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친 후에 내 시간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습니다. 교무실에 책상 겸용의 탁구대가 있으니 자연스레 직원들과 어울렸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젊은 시절 교직원 국가 대표선수를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원정한 때도 있답니다.
초임지 학교를 떠날 때까지 틈이 나면 직원들과 공을 사이에 두고 어울렸습니다. 재미를 붙이자 방과후 활동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내세울 정도의 실력은 아닙니다. 즐기는 정도라면 맞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웬일인지 탁구에 관한 기술을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배우라는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요.’
밤늦게까지 탁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말을 했습니다. 공이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응원을 하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표 팀이 패했을 때 순간적으로 내가 진 것만큼이나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공을 다루는 경기 뿐이겠습니까. 모든 경기가 다 그렇지만 구기 종목은 작은 공 하나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늦은 밤 공 하나를 두고 울고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편이 상심해하는 모습을 보니 부모라도 되는 양 내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