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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노년의 삶 20240226

by 지금은

‘젊다고 생각하면 오래 산다.’


어느 치매 치료 전문가 말입니다. 더 멋진 말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전설적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입니다.


‘나이 드는 것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숨이 조금 차지만 풍경은 훨씬 아름답다.’


나이 든 사람 모두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말에 공감합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사에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부족하거나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이 나를 스스로 그렇게 인도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우울한 날이 많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식구들로부터 얼굴을 펴고 살라 하는 충고를 종종 들었습니다. 특히 명절이 돌아오면 우울증이 더 심했습니다. 어릴 때입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기쁘고 가족들과 친척이 모인다는 점에서 반갑지만, 많은 사람을 대하면서도 늘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나의 삶은 젊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이야기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은 더더욱 싫어했습니다. 남들은 단지 이런 나를 과묵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식구와 친척들에게 다정다감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에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신경이 무디다고 해야 할까요. 쉽게 말하면 왔으면 왔나 보다 가면 가는가 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서울에 살 때입니다. 어머니의 무던함이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사촌 동생들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몇 달이나 몇 년을 우리 집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먼 친척도 있었습니다. 몇십 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들이 우리 집에서 신세 진 일을 말할 때가 있지만 나는 기억에 없습니다. 내 삶이 늘 급박하게 돌아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있었나 하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젊은 시절 직장은 늘 집에서 멀었습니다. 별을 보고 집을 나서서 별을 보고 집에 오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포천, 연천, 인천의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끝자리가 ‘천’입니다. 내 천 자(川)이지만 일천(千)으로 여겨졌습니다.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삶이 나를 위축시켰는지 모릅니다.


결혼 후 분가를 하며 집이 직장과 가까워지면서 마음의 여유를 얻었습니다. 나를 돌아볼 틈이 생겼습니다. 여유로움 속의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과 비교도 해보았습니다. 남에게서 장점을 찾아내고 내 안의 숨어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가꾸는 장이 펼쳐졌습니다. 정년퇴직이 가까워져 오면서부터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입니다. 자연적으로 마음가짐도 조금은 느긋해졌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부정에서 서서히 긍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조사에 의하면 긍정적인 생각이 노화와 치매의 발병을 낮춘다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시각이나 스트레스가 각종 질환을 불러온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한 생활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에는 금연과 적당한 음주, 적극적인 뇌 활동과 신체·여가 활동, 과일·채소 다량 섭취, 충분한 수면 등입니다. 신체 움직임과 뇌 활동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나에게 맞는 것은 무엇일까. 피트니스, 탁구를 비롯한 공 운동, 수영, 스케이트, 자전거 타기 등을 골고루 해봤습니다. 이중 수영을 어렵게 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여름철이면 물에서 놀다 보니 뜨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수영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호흡입니다. 호흡이 익숙해지니 특별히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쉬운 게 수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는 두뇌활동입니다. 퇴직 후 처음 시작한 것은 그림입니다. 기초가 부족하면서도 겁 없이 수채화 그리기에 도전했습니다. 몇 달을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악기 다루기입니다.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입니다. 악보를 보고 읽을 수는 있지만 음악적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악기는 물론 노래도 생각 이하입니다.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겁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이만한 게 없습니다. 지식의 깊이는 얕지만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다음으로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글쓰기에 도전은 평소 답답함을 풀어내는데 좋습니다. 또한 결과물이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모든 삶이 평탄할 수는 없지만 노년의 과정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죽을 때까지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각종 질병이 하나둘 나타나 마음을 괴롭힙니다. 현대의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완치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무엇인가 꾸준히 배우고 익히는 생활입니다. 노년의 삶에 관한 남의 이야기와 책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아직 낯설기는 하지만 작가의 호칭을 얻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밝은 표정이 좋다는 말도 듣습니다. 봄이 성큼 앞으로 다가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독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산책합니다. 흘러가는 구름, 해와 달과 별을 올려봅니다. 눈 녹고 움트는 새싹을 눈여겨봅니다. 짝짓기를 위해 상대를 부르는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는 새를 바라봅니다. 정오 양지바른 건물벽의 창가에 앉자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내 등이 따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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