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못 뺐어요
김장은 안 하기로 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가기 싫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버티고 서 있는 느낌.
짐을 싸기도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전날 묵을 숙소는 또 내가 찾아야 하고,
맛집도 내가 뒤져서 골라야 한다.
반찬도 해드리고 와야 하니
뭘 만들어야 할지
장 볼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밥은 남편이 차린다고는 하지만
식사는 세 끼다.
그리고 누가 차리든
설거지는 결국 나에게로 모여든다.
돌아서면 또 할 일이 생기고~
화장실 모셔다 드리기
담소 나누기
인지 능력 게임하기
등등
자잘한 일들이
하루를 쪼개 먹는다.
미뤄둔 일들은 손도 못 대고,
올라오면 월요일 녹화가
바로 기다리고 있어,
머릿속에 계속 ‘일’이 겹겹이 쌓여서
스트레스받을 게 뻔하다
생각만 해도
이미 목이랑 어깨가 뻐근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힘들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내가 진짜 가기 싫은 이유는 아니다.
견딜 수 있는 것들이다.
하면 되니까.
진짜 이유는
지난번 내려갔을 때
아버님이 툭 던진 그 한 마디.
“살 좀 빼라.”
그 말이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 박혀 있다.
그 이후로 살이 더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더 쪘다.
그걸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니 내일 뭘 입어야
덜 쪄 보일지 옷장 앞에서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면
웃기고, 서글프고
옷을 못 쌌다.
그냥 짜증 나서 노트북을 켜서
글로 분풀이를 해본다.
남편에게 혼자 가면 안 되겠느냐고
톡을 썼다 지웠다 반복..
지난주에 우리 엄마만
안 놀러 왔어도
보내버릴 뻔했다.
그래 이번 주는
시댁 가긴 가야지...
하...
이렇게까지 마음의 체력을 써야 한다는 게.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내가 진짜 편한 가족은 아니라는 걸
이럴 때마다 실감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불편함이 하나 더 있다.
김장 안 하겠다고
이번엔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내일 내려가면 하우스 한쪽에
줄지어 서 있을 배추와 열무, 무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눈앞에 보이는 순간
손이 먼저 움직이려 할 텐데.
겉절이라도 담가야 하나,
몇 포기만이라도 뽑아야 하나
머릿속이 바로 계산을 시작할 것 같다.
진짜 그냥 놔둬도 되는 걸까?
머리로는
“이번엔 안 한다”라고
백 번 말할 수 있는데
막상 그 채소들을 마주하면
몸이 기억하는 어떤 의무감이
나를 불편하게 흔들 것 같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건데
안 한다고 또 불편하고,
도와주면 힘들고
안 도와주면 죄스러워지는
이 묘한 며느리의 자리.
가기는 간다.
하지만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내일의 나는
이미 오늘부터 지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