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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Jul 18. 2020

신혼집 구하기 - 계약

[이어서]


처음에는 그 아파트를 알아보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동네 아파트들을 돌아다니다가, 부동산에 가서 시세도 물어보다가, '그 아파트'도 괜찮으니 한 번 가보라는 부동산 주인의 말을 듣고 그냥 가본 것이었다. 시끄러운 대로변에 인접하고 있지만, 필로티 아래를 지나 단지 안에 들어서는 순간, 과장을 조금 보태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다.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 C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풍기는 안정적인 분위기에 이끌렸고, 그 주 주말에 나를 끌고 그곳에 가서 본인이 겪은 그 느낌을 나에게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파트의 20평대 매물을 찾았지만, 달랑 두 동 중에 라인 하나만 24평인, 그 아파트의 매물은 매매/전세 관계없이 1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였다.


'그 아파트'가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없는 매물은 어찌할 수 없는 법. 우리는 아쉬운 대로 인근의 다른 아파트들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이 동네에서 신혼집을 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2015년에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비슷했고, 전세는 귀했다.(이렇게 부동산 매매가가 폭발적으로 오르기 직전이었다.) 일단 DMC역 출구에서 가까운 아파트 중 한 곳이 매매 매물로 나왔다고 하여 보러 갔다. 우리의 신혼집 탐방 첫 매물 확인이었다.


이 아파트의 최대 장점은 역세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근 나 홀로 아파트들 중에 그나마 세대가 많았다. 20여 년이 되어가는 복도식 아파트였지만, 한 번 확인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으면 살까 싶어 방문하였다. 우리가 보러 간 집은 그중에서도 동향이었다. 집 안은 깔끔하고 좋았지만, 발코니 너머에는 앞동 동향 라인이 보였다.


그리고 복도식이기에 맞바람을 들게 하려면 복도 쪽 방 창문이나, 현관문을 열어야 했다. 복도에 창문이 있었기에 이것도 같이 열어야 했다. 이 창문은 같은 층 입주민이 십시일반으로 돈 내서 만드는 거라 있는 층도 있고, 없는 층도 있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는 웃풍을 막아주어 창문이 있는 층이 더 좋다고 하는데, 결국 제대로 환기를 시키고 싶으면 집 밖에 나가 복도 창문 열고,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어야 한다. 음, 고민이 되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민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층마다 복도 새시 유/무가 다른 경우들이 있다. 사진 속의 아파트는 우리가 본 곳과 관계없음 ⓒ구글 검색


이미 동향의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C의 작은 누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매매가를 우리가 만들 수 있는지도 고민했다. 일단 부동산에는 고민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뒤, 우리끼리는 더 치열하게 고민했다. 한 일주일여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사지 않는다.'였다.


이제 첫 매물을 봤을 뿐인데,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처음부터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또 다른 집이 나오겠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게 9~10월쯤 우리는 첫 매물을 보았고, 적어도 연말까지는 매물을 천천히 구해보자 싶었다. (결혼식은 내년 3월이다.)


새로웠다. 원룸을 알아볼 때랑은 또 달랐다. 그때는 방음이 잘 되는지, 물은 잘 나오는지, 보안에 취약하지는 않은지 등 '생존과 직결된' 사항을 중심으로 봤는데, 이제는 빛은 잘 드는지, 아파트 시설은 어떻게 되는지, 주변 인프라는 어떻게 되는지 등 '더 좋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으로 보고 있었다. 돈의 스케일이 더 커졌고,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부담감과 중압감도 커졌다. 옛날에 부모님께서 집 보러 다녀온 후에 하시던 말씀과 분위기가 이제 나에게서도 느껴졌다.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 날은 11월 초의 토요일, 춘천에 있는 한의원에 한약을 지으러 가던 날이었다. 대학 동아리 선배가 졸업 후, 한의대 다시 진학하여 한의사가 되었고 춘천에 개원을 했는데, 가서 나의 몸보신 약도 지을 겸 춘천 구경도 할 겸 놀러 가던 길이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고속도로 너머 산과 길가의 단풍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문득, 오랜만에 부동산 앱을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매물 확인 후 잠깐 집 구경은 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언제나 희망사항이었던 '그 아파트'부터 보는데, 어라? 24평 전세 매물이 딱 하나 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당장 부동산에 전화했다. 그 집을 보러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지금 그 집을 보려고 대기 중인 사람이 한 명 있어, 이 분께 확인하고 연락을 준다고 하였다.  어차피 우리는 춘천에 가고 있던 길이었으므로 알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춘천에서 진료를 받던 중, 부동산에서 일단 매물을 보러 올 수 있느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우리는 진료를 마치자마자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춘천 가자마자 안녕...)


우리 전에 그 집을 본 사람은 망설이고 있었고,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일단 우리가 봐도 된다고 동의하였다. 그 집은 DMC역 출구 가까이에 있어 역세권이었고(출퇴근 기준 통과), 계단식 아파트였고(맞바람 통과), 남서향에(햇빛 통과) 저층이었다. 앞에는 철길이라 소음의 가능성이 있는 대신, 시야는 트여있었다. 저층이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지하주차장이 지하 2층까지 있어, 주차 공간도 여유로웠다(주차 편리 통과). 게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 엘리베이터로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이로써 앞서 세운 우리의 최소한의 기준 모두 통과)


우리는 가서 전반적인 집 상태와 집 구조에 대해 보았다. 워낙 정보 없는 나 홀로 아파트라 인터넷에 평면도도 없었다. 집은 생각보다 컸고, 버리는 공간 없이 붙박이장이 들어가 있는 등 구조도 좋았다. 창문을 다 닫으니 방음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앞쪽 기찻길에 기차 지나는 소리가 생각보다 조용했다. 오히려 뒤편에 대로 소음이 좀 있었는데, 교통 좋은 대로변 아파트에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차라리 대로가 뒤쪽이라 나았다.



결국 그 집은 우리의 첫 집이 되었다. 이사 날짜가 12월 18일로 딱 못 박혀 있어 전에 본 사람이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신혼집이라 돈만 그 날짜에 맞춰 준비하면 되어, 이삿날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제약마저도 우리에겐 기회였다. 토요일 저녁에 처음 보고, 앞사람이 계약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이자마자 우리가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바로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초스피드로 우리의 집 계약은 진행되었다.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먼저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동네를 다 둘러보고, 주변 매물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아, 이 집이 얼마나 괜찮은지 알고 있었고, 덕분에 매물이 나오자마자 집을 보고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만약 미리 둘러보지 않았더라면 이 집이 나왔어도 잘 모르고 지나갔겠지. 그렇게 기회는 가버리는 것이다. 먼저 발로 뛰어 준 C 덕분에, 그리고 딱 그 날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 본 나 덕분에, 우리는 시기적절하게 혹은 예상보다 빨리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신혼집에서 우리는 4년을 살았다. 중간에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집주인 덕에 오래 살았다. 하지만 그 사이 주변 아파트 시세는 2배 올랐다. 처음 2년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올 때부터 집을 사서 이사 가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계속 폭등과 조정을 반복하고 있어 매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4년이 될 무렵, 올라간 시세에 맞게 집주인 아저씨가 전세금 상승을 얘기하였고(그마저도 주변에 비하면 쌌다.) 우리는 이참에 정말 '내 집 마련'을 실천에 옮기자 하여 집을 구매했다. (그렇습니다. 작년 서울 아파트 매매의 중심인 30대 맞벌이 부부가 여기...) 


생각해보면, 결혼할 때는 대출이 70%까지 나왔기에 우리가 가진 돈에 대출을 풀로 받으면 신촌 인근이나 마포 근처에 32평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다. 이 동네 대장 아파트, 32평 신축 입주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사이 아파트값이 2배 올랐고, 우리는 10년 된 26평 아파트에 간신히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마저도 우리가 이사한 후에도 계속 올라, 만약 지금 구하고자 했다면 25년 된 24평 아파트를 사야 하는 수준이 되었다. 비슷한 돈으로 말이다. (내 월급은 별 차이 없는데...)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과연 4년 전 그렇게 '바로 전셋집을 구한 게 정말 행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못 구했더라면, 좀 더 대출을 크게 내서 옆에 있는 신축 아파트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었을까 싶기도 하였다. 대출을 냈으면 가능했지만, 대신 돈을 좀 더 모아서 이사 가고자 했던 그 아파트는, 지금 너무 올라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도, 어른들도 모두 대출에 대해서는 쫄보였다. '몇 억' 대출. 그 부담을 안은 자만이 열매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가 이사를 나가며, 전세금을 받기 위해 집주인 아저씨를 만났을 때, 아저씨에게 "집 값 올라서 좋으시겠어요."하고 말을 건넸다. 어쨌든 이 집도 2배 올랐으니 집주인이야 좋지 않겠는가.(심지어 이 집은 처음부터 갭 투자용도 아니었고, 원래 아저씨가 살던 집을 그냥 세 준거라 등기부 등본이 깨끗했다.) 그랬더니 


"아우, 그때 내가 이 집 팔고 옆에 신축 아파트 사려고 했는데(우리가 욕심 낸 그 아파트), 그때 부동산 아저씨가 팔지 말라고 해서 그냥 뒀거든, 그때 그걸 샀어야 했어요."라고 하신다. 


이 동네 아파트값이 말 그대로 2배 올라서, 2억은 4억이 되었고, 4억은 8억이 되었다. 배수의 함정 덕에 금액 차이는 더 커져버린 것이다. 이 집도 올랐지만, 옆에 더 많이 오른 곳이 있기에 그 차이가 그만큼의 손해로 느껴지는 듯했다. 


'아! 결국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아쉬워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돌아보면 기회였다지만, 그 시간을 같이 살아가는 동안 그게 기회인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기에 뒤돌아서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그래서 다시, 4년 전에 그렇게 전셋집을 구한 것도 행운이고, 그나마 지금이라도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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