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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Sep 20. 2020

셀프웨딩 준비하기 - 수제 청첩장과 영상 제작

결혼식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

셀프로 점철된 우리의 결혼 준비는 청첩장과 오프닝 영상에서 정점에 다다랐다. 그 어떤 것들보다 한땀한땀, 한컷한컷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어 특별하다. 사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어야 하는 청첩장, 데이트 사진을 이어 모아 흔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뭐 그리 특별할게 있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달랐다. 청첩장은 표지부터 멘트, 지도까지 우리가 직접 그렸고, 영상은 내가 베가스에서 사진과 멘트, 음악 싱크까지 맞춰가며 직접 만들었다. 사진만 넣으면 자동으로 효과를 휙휙 넣어주는 프로그램이 아닌, 투박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을 돌아보는 내 마음 하나하나가 들어간 추억의 집대성인 것이다. 


오늘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진행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셀프 웨딩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했더라 하는. 확실히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 것 같다. 당시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느라 힘들었다지만, 그 결과는 지금까지 뿌듯함으로 남아있다. 



[청첩장]

한 번 쓱- 보고 버려지는 존재. 결혼식 정보를 알려주는 유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받아서 펼쳐보고, 한 번 감상을 말한 뒤, 결혼 축하해~ 라고 말하고, 그 뒤에 어디 뒀는지 몰라 막상 결혼식에 갈 때는 온라인 청첩장 링크를 보고 가는게 현실이다. 안 만들 수는 없지만, 아무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그 것. 그렇게 한 번 보고 버려질 존재에 우리는 어쩌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힘을 쏟았다. 


전부터 나는 그렇게 청첩장이 버려지는게 안타까웠다. 어떻게보면 이 결혼을 종이 카드 하나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작품'인데, 결혼식 후에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게 아쉬웠고, 우리의 결혼을 알리는 내용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이왕 결혼 후에 청첩장을 버릴 거면, 우리한테 다시 버리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의 연장으로 나온 아이디어가 청첩장에 결혼 축하 편지를 써달라는 거였다. 


결혼 축하 인사를 영상으로, 다른 쪽지 등으로 받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청첩장 맨 뒤 빈 공간을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렸다.  


돌리면서 굳이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는 아예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결혼식 마지막 코너에서 추첨 이벤트를 하였다. 축가 후에 친구들이 청첩장 편지를 모아놓은 덕담상자를 가져다 주면, 거기에 청첩장을 추첨하여 편지를 읽고, 문화상품권을 증정하기로 한 것이다. 준비한 선물은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 5매. 복권도 행운 번호도 아닌 편지 이벤트. 나름 비밀(?)리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준비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청첩장 구성은 아래 사진과 같다. 


청첩장 표지. 저장된 이미지가 이렇게 쨍하지 않은데, 브런치에서 원본인데도 사진을 더 파랗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청첩장 내지


종이 청첩장 구성이야 워낙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지만, 우리는 심플하게 카드형으로 했다.
표지 커버는 프러포즈 하는 날에 찍었던 사진, 그리고 펼치면 
좌, 결혼 설명 / 우, 결혼식 오는 길 
덮으면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
군더더기 없는 알찬 구성이라 생각했다.


결국 이 청첩장에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걸 가져온 구성은 하나도 없는 셈이 되었다. 보통 인터넷에서 보이는 좋은 문구들을 가져와 결혼의 서문을 여는데, 우리는 C가 직접 쓴 글이다. C는 우리의 10년을 돌아보며 이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꼭 본인이 직접 쓰고 싶다고 했다. 글에 욕심이 있었던 둘이 각자 시처럼 문구를 제시하였으나 나는 처참하게 졌다. 내가봐도 C의 문구가 훨씬 깔끔하고 의미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쓴 건 좀 직접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상에 하나 밖에 없을 문구가 청첩장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 


지도의 경우, 유명 결혼식장이라면 이미 있는 내용을 가져오면 되었겠지만, 우리는 레스토랑이었기에 표준화된 포맷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그냥 직접 그렸다. PPT에 선 하나씩 그어가며, 지도를 보고 최대한 간단하게 공간 구성을 해가며, 일방통행이 많은 목동이었기에 나름 그것도 표현해가면서. 나름 상세하게 오시는 길을 설명하고 나니 한 페이지가 꽉 찼다. 


청첩장 하나의 완성을 위해 한땀한땀 정성을 기울인 흔적들 ⓒ폴더캡쳐


그리고 맨 뒤, 축하의 말을 남겨달라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꽤 많은 분들이 편지를 써 주셨다. 정성을 담아서. 동아리 선, 후배부터 회사 동료들, 친척들까지 다양하게 써 주셨다. 청첩장을 깜빡해서 세븐 스프링스 테이블 종이에 급하게 롤링페이퍼처럼 편지를 써서 준 C의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다시 우리 손으로 들어온 편지(청첩장)들은 고이 모아 잘 보관하고 있다. 가끔 생각나면 이 편지들을 읽어보곤 한다. 우리가 이렇게 축하를 받으며 결혼했었지 하고 추억에 잠긴다. 사진이나 영상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에게 남았다. 



사실 청첩장 표지는 처음부터 저렇게 깔끔하고 예쁘지 않았다. 우리는 미술과 예술, 디자인과 거리가 먼, 천문우주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회사원일뿐이었다. 



나름 신경 써서 만들었던 초안이다. 표지 사진에서 우리 머리 위 공간에 간단한 멘트를 넣으면 딱 알맞겠다고 생각하고 문구를 썼는데, 생각보다 폰트를 고르는게 어려웠다. 나름 '결혼'에 하트 바탕으로 포인트를 주고, 이것 저것 손을 댔는데 다 완성하고 보니 뭔가 아쉬웠다. 아마추어 티가 팍팍 났다고 해야 하나. 진짜 직접 만들었어요~ 하는 티가 나는, 정성을 쏟은 흔적은 보이는데 전문성은 떨어져보이는 그런 초안이었다. 


내가 무척 아쉬워 하면서, '아 뭔가 부족한데.. 뭔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 하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C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작은 누나에게 위 초안을 보냈다. 아무래도 디자이너의 눈길로 뭔가 어설픈걸 알려주지 않을까 했는데, 바로 첫 이미지와 같이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결과물을 보내주셨다. 와! 한 눈에 봐도 차이가 확 나는구나! 여기서 또 한 번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를 느꼈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뜯고 고민했어도 이런 구성은 못했을 것 같은데.. 이전 버전으로 청첩장을 만들었으면.... 으, 생각만 해도 부끄럽다. 괜히 사람들이 있는 디자인들 중에 고르는게 아니구나. 새삼스럽게 셀프의 어려움을 또 깨달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작은 누나 덕에 빨리 완성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표지를 보자마자, 이거다! 하고 최종 결정을 내렸고, 바로 인쇄에 들어갔다. 




[오프닝 영상]

보통은 연애 시절의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만들어 예식 전에 틀어둔다. 기다리는 사람 지루하지 않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의 영상은 조금 달랐다. 정말 우리의 10년을 집대성한 결과였기 때문에 나는 단순한 영상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예 결혼식 오프닝 코너로 준비했다. 예식을 영상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 딱 한 번의 재생을 위해, 나는 몇 날 며칠을 퇴근하고 온 밤 10시쯤부터 퀭한 눈을 비벼가며 영상을 만들었다.


사실 기술적으로 좋은 영상은 아니다. 시각적 화려함은, 인터넷에 있는 포맷에 사진을 넣은 영상들이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나는 그 천편일률적인 영상 스타일들이 싫었고, 투박하더라도 나만의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정말 엄청 투박한게 함정이지만) 멘트 하나, 텍스트 위치 하나, 음악의 흐름이 바뀌는 지점과 사진이 변하는 지점, 모두 일일이 신경 쓰면서 숱한 수정을 거치며 완성한 영상이다. (비록 중간중간 오버랩이 깔끔하지 않은 부분은.... 고물 컴터의 한계다. 용량이 엄청나서, 완성 영상이 너무 버벅여 랜더링을 수없이 한 끝에 현실 타협한 것이다. 나름 핑계대는 중...) 


이 영상을 만들면서, 우리의 10년을 돌아보는 것도 마음 찡했고, 이걸 하나의 영상으로 남겨놓는다는 의미에서도 마음이 찡했다. 나는 결국, 영상을 다 만들고 나서 C와 함께 보면서 울었다. 이렇게 거쳐온 우리의 시간을 내 손으로 하나의 기록으로 남겼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아마 누구나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마음이 동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나의 과거를 한 번 정리하고, 앞으로 변할 현재를 실감하게 해주는 방점이 영상이었다. 


10년치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우리가 그냥 친구였던 시절부터, 단체 사진을 포함하여 쭈욱, 모든 것을 돌아보았다. 사귀기 시작한 후의 사진은 고르기 쉬웠다. 잘 나온 것을 고르면 되니까. 하지만 과거의 사진은... 대부분이 그냥 기록용이라서 막 찍은 것들인데다가, 우리의 모습도 아주 막생겨서 진짜 고르기 힘들었다. (정말 나이 먹으면서 외모가 용됐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결혼식 때 한 번 보고 지나갈 테니까! 하고 골라서 만들었는데, 막상 이 글을 쓰면서 영상을 올린다고 생각하니 백 배는 더 부끄럽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마다 단체 사진에서 우리 머리 위 화살표를 보고,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놀렸는데, 나름 그것도 신경 쓴 것이다. 빨리 지나가는 영상 속에서 우리를 한 눈에 알아봐야 하니까. 좀 더 예쁜 화살표를 쓸 겨를이 없었다는게 아쉬웠지만, 그것도 그 나름의 매력 아니겠는가. 


구구절절 서두가 무지하게 긴 영상을 이제 올려볼까 한다. 너무 부끄럽고, 음악 저작권도 걱정되고, 친구들의 초상권도 걱정되기에 당분간만 업로드했다 내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부끄러워서 브런치 글에서도 한 번도 우리의 얼굴을 보인적이 없는데, 이렇게 구구절절 써놓고 보이지 않는 것도 도리가 아니니, 구독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영상을 잠깐 올려볼까 한다. 그냥 이런 스토리로 이렇게 결혼한 부부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볼 때마다 만들던 때의 마음이 생각나서 울컥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 시절을 생각하며, 초심을 돌아보며, 항상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결혼 생활을 하겠다고. 


청첩장과 영상, 욕심으로 만들었지만 두고두고 마음 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우리의 초심을 느끼게 해 줄 것들이 되었다. 




[영상은 삭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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