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Grace Apr 11. 2024

몇 번의 위로와, 몇 번의 다시 무너짐

다 나의 탓이겠지요.

몇 번의 위로와 몇 번의 다시 무너짐.


아주 다행히도, 스물넷 이후 만났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를 이용하고, 나를 어떻게든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럼에도 나를 이해하려 하고,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씩 사람에 대한 신뢰가 돋아났다. 아주 가끔은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서 내 가장 깊은 곳 바로 위에,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슬픔에 대하여 털어놓기 시작했고, 위로와 조언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내가 가장 닮고 싶고 존경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때 당시에도 서로 알게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어릴 적 알던 지인이 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는지 그 사람을 소개해 주었고, 몇 번 만나고 몇 번 연락하고 다시 조금 연락과 만남이 뜸해지는 시점이었다.


나는 그때 문신을 잠시 쉬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다만 급하게 들어간 회사여서 그런지 업무 스트레스는 매 순간 나를 옥죄어 왔고, 출근해 있는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밥 한 끼 하자고.

사실 근 몇 달간 편한 사람과 사적인 식사 자리를 한 적이 없어서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을 약속에 동의하고 날짜를 잡았고, 이 사람은 본인은 마포구에서 살고, 마포구에서 활동하지만 굳이 나를 만나려고 나의 직장이 있는 강남까지 왔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누군가의 문장처럼, 나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서 고기를 먹자고 했고, 그 형은 검색하고, 나를 한 고깃집으로 안내했다.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보통 먹는 가격에 배는 되었을 것 같다. 부담스럽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나는 이 자리를 최대한 불편함 없이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함께 식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귀가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차피 강남에서 지하철로 나의 본가가 있는 분당까지 가는 것은 그리 번거롭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하철로 간다고 이야기했으나, 그 형은 또 굳이 나를 차로 분당까지 데려다주었고, 꽤 깊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나눴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기억이 잘 없다. 다만 나는 그 당시 꽤 위로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사람은 신기했다. 강남에서 분당까지 운전해서 나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고 살고 있는 마포까지 간다. 나라면 아무리 친한 동생이라 할지라도 쉽게 그럴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이 마음을 잘 모르겠어도 내가 이 사람에게 큰 위로를 그때 받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게 만나서 위로를 받고, 나의 마음에 며칠, 혹은 몇 시간의 평화, 평안이 찾아오더라도 잠시, 나는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다. 회피하는 것). 심지어 회사 또한 출근하지 않아 해고 처리를 당하기도 했다. 약을 가끔 먹지 않다가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약을 복용한다.


몽롱한 상태는 이제 싫은 개념을 넘어서 서서히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원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익숙해지고, 그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더 망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어느 동영상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지만, 상관없다. 나는 하루하루 부서져만 가는 존재였다.


그때의 나는 재와 같았다. 향을 태워본 적 있는가? 향을 태우면 재가 남는다. 그 재는 아주 입자가 고운 가루이다. 아무리 모으고 모아 단단해 보이는 형체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입김 한 번에 산산이 흩어지는 가루가 바로 재이다. 나는 재였다. 수많은 따스한 위로와 따스운 만남이 있었지만, 누군가의 날 선 한 마디, 아주 짧은 이성과의 만남, 매 달 날아오는 살벌한 카드 명세서. 이 모든 것들은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되어 겨우 겨우 모아놓은 재의 덩어리를 흩어놓는다. 아주 쉽게 부수어 흩어놓는다.


누군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 무너짐은 나에게는 절대로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위로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무너질 텐데. 어차피 부서질 텐데.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위로일 텐데. 위로를 회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피하고, 다른 것을 의지하게 만들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더 큰 쾌락을 찾으려 의미 없는 발버둥을 치기도 하고. 출근하지 않고 잠을 자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기에 바빴다. 목표를 위하여 살아간다는 개념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를 생존해 있는 것에 의의를 두곤 했다.


확실한 것은 그 당시 나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좋은 사람이 많은 것과 이겨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나의 무너짐은 사실 다른 외부적인 요인보다도 온전히 나의 탓이었다. 온전히 내가 감당하지 못하여 나는 무너졌다. 원망은 없다. 원망할 사람도 없다.


그렇게 이 년 가까이를 보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아마도.

이전 08화 석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