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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Apr 18. 2024

그 선택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절정일까 싶습니다.

그 선택을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망가진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이 한 사람의 인생은 그저 기구하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불행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누누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마 십 년 보다 더 오랜 시간 죽음을 갈망해 온 나란 사람이 불쌍해서일까, 처참히 부서지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일까,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들로 원인을 찾으며 며칠 째 울었다. 그저 울었다. 가끔 작은 칼로 나의 팔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안정제를 의지한다. 또 의지한다.


아마 나는 빛을 보았을까.

아마 나는 희망이라는 것의 맛을 보았을까.

고민해 봐도 뭐 어쩌겠나.

지금의 나는 천천히, 그리고 깊게 충분히 가라앉았는데.


정신은 몽롱하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상상만 해도 끔찍해진다. 눈을 뜨고, 시계가 오전 9시를 보여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카드사와 은행에서 전화가 온다. 어서 돈을 갚으라고 친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압박한다.


집에서는 그래도 공황 발작이 일어나지 않아 나에게는 집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는데, 어느샌가 집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공황 발작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오고, 나는 무기력하게 안정제 통을 집고 대충 알약 몇 알을 물 없이 삼키는 이 일상의 반복이 더럽게도 비참하다.


“최대한 빨리 마련해서 상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수 차례 반복하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또 생각들이 머리를 오고 간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씻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귀찮다.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한 걸음, 한 걸음, 십 분이 한 시간 같은 기적을 느끼며 병원에 도착한다.


“기다리세요.”


저 예의 없는 간호사는 언제쯤 잘릴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아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나의 이름을 불렀다. 힘 없이 일어나서 진료실의 문을 열고 쓸데없는 대화를 하러 방에 들어간다.


“일주일 어땠어요?”


“더 좋아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약을 더 올려주세요.”


10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문답 후 진료실 문을 열고 나선다. 대충 처방전을 받고, 계산을 한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1층으로 내려간다. 약국의 문을 연다. 그나마 이 건물에서 나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은 약사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환하게 인사할 기력도 없어 아주 대충 목으로 인사 후, 처방전을 건넨다. 한숨을 한 번 쉬고 담배를 태우러 나간다. 한대, 두 대, 세 대, 줄 담배에 기침을 할 때쯤 다시 약국으로 들어가 약을 받는다.


“2주치예요.”


다시 나는 걷는다. 집으로 간다. 카드 값도 밀려있는데 다른 취미를 가지기는 힘들다. 집에서 뭘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찾아온다.


[이제 끝내자]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야.]

[이제 끝낼 수 있어]


생각을 떨쳐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이것들을 고이 머릿속에 간직한 채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숫자가 올라간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른다. 왜 나의 손은 떨릴까. 딸깍, 딸깍, 한 두 번 틀린다. 문을 열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탁 잠근다. 

의자에 앉는다. 책상을 바라본다. 한숨이 나온다. 급히 뜯어 입으로 털어 넣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구겨진 약 봉투가 보인다. 어제 나의 손목에 상처를 냈던 붉은 날붙이가 눈에 들어온다. 


“x발”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음악을 들어야겠다. 밤에 울다가 멈춘 슬픈 그 음악이 흐른다. 스피커를 통해 나온 파동이 귀를 치고, 그 파동이 나의 머리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아마 눈물이 나오는 부분을 눌렀으리라.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나온다.


이 망할 인생은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 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존재하기는 한 건지, 나에게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비극적인 문답들이 반복된다.


[끝내. 끝내자.]

[괴롭잖아, 끝내면 편해질 거야.]


아까 고이 간직했던 머릿속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진짜 괜찮아질까?”


[당연하지. 믿어봐.]


머릿속 생각과 대화를 한다. 몇 시간을 대화했으리라. 눈을 조용히 질끈 감았다가 뜬다. 아까 받아왔던 약 뭉치가 어디에 있는지 잠시 찾는다. 찾았다.


이 주치 분량의 약이라 양이 상당히 많았다. 이 정도의 양이면 가능하겠다.


투둑, 투둑, 약 봉투를 뜯는다. 일단 일 주일치 먼저, 입에 털어 넣는다. 겨우 겨우 삼켰다. 한 번에 다 넣기는 어려운 거구나. 헛웃음이 나온다.


남은 것도 남기지 말자. 투둑, 투둑, 다시 약 봉투를 뜯어 나머지 일주일 치를 입에 털어 넣는다. 침이 말라서일까, 이제 물 없이 삼키기 힘들다. 부엌에 몰래 나가 물 컵에 물을 가득 받아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몇 모금의 물을 목으로 넘긴 후에야 삼킬 수 있었다.


남은 게 있을까. 아.

비상시를 위해 받은 안정제가 있었지. 안정제가 있었지. 빼놓을 수 없지.


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플라스틱 약 통이 열린다. 이거까지. 이거까지.


몇 십 알이 될까. 손에 가득 잡히는 안정제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이 전의 경험이 있으니 물을 다시 마신다. 하나, 둘, 셋, 세 모금의 물 끝에 오늘 받은 모든 약을 다 먹었다. 이제 시간이 필요하겠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X발, W 같네.”


다시 한번의 혼잣말 후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 눕는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뜰 떼는 나의 방 침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신이 조금씩 날아간다. 정신이 조금씩 날아간다. 이제 끝이다.


[X신]


머릿속의 생각이 나를 비난한다. 왜? 시키는 대로 했잖아. 왜 그러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전,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깨운다. 나를 깨운다. 나의 부모님이 왜 여기 있지? 나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데. 왜.

3일이 흐른 뒤, 월요일이란다.


“하.”


한 번의 한숨을 쉰다. 나에게는 죽음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나는 그 선택을 했고,

했고,


나는, 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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